KBS도자기스페셜
- 최초 등록일
- 2007.03.26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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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KBS도자기스페셜 제3편`이슬람의유산`을 보고 쓴 레포트 입니다.
목차
청화백자에 대해
청화백자의 시기구분
본문내용
□ 청자의 쇠퇴와 백자의 발생
12세기 전반 고도로 세련된 고려자기(高麗磁器)는 다양한 발전을 하였으나, 몽고 침입 이후 퇴보하기 시작하여 이러한 퇴보는 귀족층으로부터의 소외로 이어져 수요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건국과 더불어 새로이 등장한 양반(兩班), 사대부(士大夫)의 확산은 유교사상(儒敎思想)을 바탕으로 한 백자(白磁)의 수요를 증대시켰다.
조선시대(朝鮮時代) 도자기(陶磁器)를 대표하는 것으로 분청자기(粉靑磁器)와 백자(白磁)를 들 수 있으나, 15세기 중엽이후 집권적 관료체제가 확고해짐에 따라 광주분원에서는 양반 취향에 영합하는 양식으로 일관하게 되었으며, 토산공물(土産貢物)로서의 분청자기(粉靑磁器) 생산은 자연 서민화의 길을 걷게 되어 16세기 후반경에는 백자에 흡수 소멸되고 백자만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제작되며 다양한 발전을 거듭해 간다.
백자의 종류에는 안료(顔料)로 그린 무늬나 장식기법이 없는 순백자(純白磁)와 청화백자(靑畵白磁), 철화백자(鐵畵白磁), 진사백자(辰砂白磁) 외에 상감기법(象嵌技法)으로 무늬를 나타낸 상감백자(象嵌白磁)와 흑유(黑釉), 청화채(靑畵彩), 진사채(辰砂彩)의 백자(白磁)가 있다. 이들 중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은 순백자(純白磁)였으며, 다음으로 청화백자(靑畵白磁)와 철화백자(鐵畵白磁)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비교적 많이 제작되었고, 상감백자(象嵌白磁)는 초기에, 진사백자(辰砂白磁)는 후기에 조금 만들어졌다.
□ 청화백자(靑畵白磁)의 명칭(名稱)과 발생(發生)
청화백자(靑畵白磁)는 순도 높은 순백의 기면(器面)위에 청색안료(靑色顔料)로 그림을 그리고 잡물(雜物)의 함유가 없는 장석계(長石系) 유약(釉藥)을 그 위에 씌워 고화도(高火度)에서 환원염으로 번조(燔造)한 경질백자(硬質白磁)를 말하는 것으로 청화백자(靑畵白磁), 청화백자(靑華白磁), 청화백자(靑花白磁), 화자기(畵磁器), 화기(花器), 화기(畵器), 채기(彩器)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런데 청화(靑花)나 청화(靑華)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靑畵白磁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 제품은 청화(靑畵)로 표기하는 경향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문헌(文獻)에서도 회청(回靑)이라는 푸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그릇이라는 뜻을 명백히 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