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유교의 구조와 사회
- 최초 등록일
- 2007.03.12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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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전통 사회의 구조 인식
2. 내용 요약 - 의식과 역사
본문내용
효를 규정하고 있는 본질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경외를 강조한 원칙이 언뜻 이론상으로 모든 공동체 단위의 윗사람, 특히 부모 이외에 임금과 스승에 대한 순종의 예절에 동일한 강도로 적용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삼강의 가르침에서 보듯이 ‘백성은 부모․임금․스승에 의해 살게 되므로 똑같이 섬기라’한 것은 인륜의 의무와 예도의 균등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보면 유교의 가치 체계의 바탕을 이루었던 효도라는 인륜의 원칙이 가진 기대의 강도가 임금에 대한 충성이라는 또 하나의 인륜 원칙을 가진 사회에의 기대 강도와 반듯이 같거나 일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왕권의 정치를 함에 있어서 정당성을 논할 때,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될 수 있었음에 반해, 육친에 대한 효는 정당성이 질문될 여지란 없었으며, 더구나 자식이 집안의 중심이라는 ‘자녀 중심’의 가족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버이에 대한 순종과 경외라는 효의 가치관이 이론상으로는 국가 권위의 위계 정점에 위치한 통치자에게 옮겨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특수주의가 보편, 일반화될 수 있는 기능화의 대등성(function equivalent)을 자아내지는 못하였다.
백성을 유교의 가치로 깨우치고 가르치는 것은 오백 년 동안 조선 사회가 짊어진 커다란 임무이자 과제였다.
고려사회에서도 역할의 사회적 분화는 있었지만 조선 사회에서는 지식인층과 비지식인층(혹은 양반 계층과 비양반계층)의 구분이 여러 다른 하부 체계의 분화와 함께 더욱 뚜렷이 결정화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조선 사회의 지식인 양반 계층만이 왕족과 함께 정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특수(특권)를 누렸다고 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유교 사회의 가치가 거룩한 것이라는 정당성을 인정받고, 이 가치가 조선 사회의 지배 엘리트 계층에 의하여 지지되고, 신봉되면서, 조선 사회의 유교 질서와 양반 엘리트는 상호 의존하고 옹호하게 되었다.
비록 유교의 가치체계가 조선 사회 질서의 바탕을 이루었지만, 그 보다 먼저 유입된 무속신앙과 불교의 종교 의식 세계가 민간 신앙 속에 편재하고 있었다. 이 같이 유교의 가치 체계가 민간 신앙의 영향을 한편으로 용납하고 있었지만, 이것 역시 유교주의 자체의 주도권의 유지가 보장되는 한도 안에서 토착 종교의 상징과 의식을 흡수한 것이었지만, 대부분 이를 격하 시켰다. 유교 사회의 중심 가치 체계와 이것이 수반하는 권위의 유지에 위험이 되거나 위협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또는 그 권위의 우위성이 허물어지지 않는 여유와 한계를 두고, 조선 사회의 지배 지식인층은 다른 종교의 여러 요소들을 묵인하고 취사 선택하였다.
조선 사회를 지배해 온 양반 지식인들은 스스로 속한 사회의 가치 체계를 제도로써 대표하고 엄격히 실천하였으며, 이것에 대한 공공연한(공식적인) 주석가이자 전달자로, 그리고 후견인으로 자처하면서 사회 체계를 견고히 유지해 왔으며, 이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조선 사회는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사회 체계의 여러 범주들이 지리멸렬한 해체 상태에 빠져들 만큼 긴급한 위기의 사태가 없는 안정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