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 관광 스토리텔링
- 최초 등록일
- 2007.03.02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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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에 관한 관광상품화스토리텔링
목차
1. 스토리발굴
-해인사개요
-세계인쇄문화의 요람
-천년건축물
-주요매력물
2. 시장분석
-불력(佛力)에 기원한 나라의 평안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쇄술
-장경판전에 숨겨진 건축학
3. 테마개발의 예
-세계적인 불교 유적의 이념(앙코르와트, 보로부두르, 팔만대장경)
-유일한 유물 대장경판
4. 인근관광지
5. 홍보방안
본문내용
1. 해인사 개요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 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현재 경상남도의 통도사, 전라남도의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 3대 명사찰로 꼽힌다.
2. 세계 인쇄문화의 요람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은 우리 조상들이 만든 위대한 문화재이며, 불교의 보배이다. 그 만듦새와 교정의 엄밀, 부수의 완벽함은 세계 30여종의 장경판 가운데 으뜸이다.
고종 19년 1231년부터 1258년까지 몽고군이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다. 그리하여 고려는 1232년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끈질기고도 필사적인 대몽항쟁을 전개했다. 이에 전쟁의 참혹함에서 벗어나고 나라의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에 힘입어 고려조정과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여 불력(佛力)으로 몽고군을 격퇴시켰다.
팔만대장경은 처음에는 강화도에 모셨으나,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 서울의 지천사로 옮겼다가 그 뒤 조선 태조 때(1398)에 해인사로 옮겨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