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이후 대명, 대청관계
- 최초 등록일
- 2007.02.25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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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호란이후에 청과 명과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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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서론
-조선은 국초 이후 대외적으로 명에 대해서는 사대, 왜나 여진에 대해서는 교린이라는 일정한 관계를 이루어 왔다. 조선은 16C 이후에 소중화사상으로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명에 대한 의리와 대의명분만을 내세우고 있었고, 그러나 16C 말의 왜란과 17C 초의 호란은 조선의 대외 문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중국 본토에서는 명에서 청으로 세력이 변화되고 있었다. 정묘․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명의 사대와 여진(청)의 교린관계가 어떻게 변화 하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2.본론
①호란 전 대여진 교린(대여진 교린)
-호란 전 조선의 대여진 관계는 선초이후 주로 변방의 소요(소요)였으나 누르하치(노아합적)가 등장하면서부터 다소 완화되었다. 16C말 무렵에 조선은 대여진 문제를 일일이 명에 보고 상의하였으며, 명은 조선․여진의 세력을 상호견제하고 있었다.
당시 여진은 조선과 화호를 맺고 수직을 받기 원하였으나 조선은 대명관계를 내세워 거절하였다. 대체로 선조 연간에는 조선은 여진의 화호적인 태도를 받아들여 현실 문제를 위주로 교린관계를 이루면서 대명 관계를 전제로 그들의 접근을 일단 견제하고 세력 확대를 주시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명․청교체기 때 조선의 태도에서도 나타나듯 절충적인 정책을 여진에게 펴고 있다. 그러다가 인조반정이후 인조가 즉위한 후 대명사대에의 충실을 표방한 후 인조는 명․청전쟁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여 명과 여진이 적대관계가 성립된 것은 사대관계를 가진 조선 역시 여진과는 교린관계가 아닌 적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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