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7.02.24
- 최종 저작일
- 2007.0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현대 문학사 시간에 발표수업 자료로 썼던 레포트 입니다~
나혜석에 관해 정리해서 A+ 받은 내용입니다.
참고하세요 ^^
목차
1. 나혜석의 생애
2. 선각자 나혜석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나혜석의 생애
우리 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며 여권운동의 선구자인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은 1896년 4월18일 부유한 개명관료 가정이었던 나기정의 5남매 중 차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우등을 놓치지 않는 명민한 소녀였다.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오빠의 권유로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 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유화를 공부한 서양화가이다. 1914년에 유학생 동인지 『학지광』에 「이상적 부인」이라는 최초의 글을 발표하고 근대적 여권을 주장하였다.
1918년에 학교를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하던 중 3·1운동에 참가, 여학생들을 만세운동에 참가시키기 위해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외교관이었던 김우영과 결혼하였고, 문예지 『폐허』의 창간동인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선전을 통한 그림 작업과 잡지 기고의 활동을 쉬지 않았다. 1921년 그녀는 귀국 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서울에서는 첫 번째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개인전시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유화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데 힘썼고 초창기 「이른 아침」(早朝)과 같은 목판화로 민중의 삶을 표현했다. 당시로는 놀라운 숫자인 5천명의 입장객을 끌어 주목받았고, 제1회 서화협회전람회에 유화를 출품하였다. 1923년 부군이 중국 안동현(현재의 중국 단동시) 부영사로 임명되어서 만주로 이주하였는데, 부영사가 된 남편을 따라 안동현에서 살 때는 국경을 넘어 다니는 외교관 부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독립운동가들의 편의를 보아주기도 한 민족주의자였다
참고 자료
박석분, 박은봉 공저, 「인물여성사(한국편)」, 새날, 1994.
이배용 외, 「우리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청년사, 1992.
김옥길, 「한국여성사 Ⅱ」,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사편집위원회, 1972.
김활란 외, 「아껴 무엇하리 이 靑春을」, 문학창조사(한문), 1980.
박인덕, 「한국 역사 속의 여성인물 (下)」, 한국여성개발원, 1998.
이상경 편집교열, 「나혜석 전집」, 태학사, 2000.
나혜석, 「이혼고백서」, 오상, 1999.
「역사비평」 『최초의 여류서양화가 나혜석』, 역사비평사, 1992 계간 17호. pp.239-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