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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남한산성 답사기행문

*주*
최초 등록일
2007.02.17
최종 저작일
2006.11
7페이지/한글파일 한컴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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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단순히 짜집기한 보고서가 아니라, 실제로 조선시대 유적지 중 하나인 남한산성을 답사하고 쓴 기행문입니다. 직접찍은 사진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좋은 점수를 받았던 레포트입니다.

목차

■ 남한산성 소개
■ 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
■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남한산성 남문으로
■ 남한산성 남문에서부터 수어장대로
■ 서문을 거쳐 연주봉옹성으로
■ 서문에서 국청사와 숭열전으로
■ 종각으로 그리고 침괘정과 행궁으로
■ 현절사로
■ 답사를 마치며

본문내용

■ 남한산성 소개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기 전까지 항전했다고 해서 유명한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데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한산성은 한강과 더불어 주요 거점이었다. 그래서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사실이나,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 잡고 있는 사실로 볼 때 삼국시대의 백제 때부터 이 지역에 산성을 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가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를 시작해서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하였는데, 이때 산성 내에 행궁을 비롯한 연무관 등을 설치하고 수어사를 임명해서 군사적 요충지로 관리해 왔다. 그러다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산성 주변의 승려들로 승군을 조직해서 관군과 함께 산성을 방어하도록 한 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시설들이 1907년 8월에 불태워졌다가 복원을 한 것이 현재의 남한산성이라고 한다.

■ 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

평소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조선시대 유적지를 떠올려보니 경복궁 같은 고궁이나 태릉 같은 왕릉, 그리고 좀 멀다 싶은 수원 화성 정도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수업 중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에 관해 배우면서 남한산성에 관심이 갔다. 7년간의 왜란을 끝내고 내치에 힘써야 할 때 실리를 따르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자들이 결국 결국 명분에 휩싸여 또다시 백성들을 전란으로 몰아넣은..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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