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처용가와 관련된 문학작품들
- 최초 등록일
- 2007.02.04
- 최종 저작일
-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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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시가의 이해 시간에 작성한 처용과 관련된 문학 작품 연구 레포트입니다.
처용으로부터 파생된 시와 소설, 희곡 등 다양한 분야의 문학을 소개하였습니다.
목차
① 향가 <처용가>
② 고려가요 <처용가>
③ 김춘수의 시 <처용단장>
④ 신석초의 시 <처용은 말한다>
⑤ 김소진의 소설 <처용단장>
⑥ 이윤택의 소설 <사랑의 방식>
과제를 마치며...
본문내용
① 향가 <처용가>
처용가는 879년(헌강왕5) 처용(處容)이 지었다고 하는 노래로,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조에 실려 전한다. 형식은 팔구체(八句體)이며, 향찰(鄕札)로 표기되었다.
내용은 제 49대 헌강왕 때에 서울서 바다 어구까지 집들이 총총 들어선 가운데 초가가 한 채도 없으며 길에는 피리 소리,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비바람도 철을 따라 순조로웠다. 어느 날 대왕이 개운포에 놀이를 베풀었다가 환가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홀연히 구름과 안개가 일고, 천지가 캄캄하여 앞길조차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괴이하여 좌우에게 물어보니 일관이 말하기를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오니, 무슨 좋은 일을 행하여 이를 풀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소관 관리에게 칙령을 내려서 용을 위하여 그 근처에 한 절을 세우게 하기로 하였는데, 이 칙령이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다 개었다. 그래서 거기를 개운포(開雲浦)라 불렀다. 동해의 용은 기뻐서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어전에 나타나서 왕의 덕을 찬송하여 노래하고, 음악을 올리며 춤을 추고, 그 중 한 아들을 왕께 주었다. 그리고 아들은 함께 서울에 와서 왕의 정치를 보좌하게 되었는데 이 용의 아들이 처용이다. 왕은 처용을 오래 멈추어 두기 위해서 아름다운 아내를 주고, 또 급한 직을 주었다. 하지만 처용의 아내는 절세의 미인임으로 역신이 그를 흠모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변신을 하고, 어느 날 밤 그의 집에 이르러 처용의 부인과 몰래 함께 자고 있었다. 처용이 바깥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둘이서 함께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그곳을 물러갔다. 이때에 역신은 자신의 모양을 나타내고 처용의 앞에 꿇어앉아서 “제가 공의 부인을 흠모하여 지금 범했는데, 공이 보시고도 노여워 안하시고 도리어 노래를 부르시니 이후로는 공의 화상만 있는 곳이라도 결코 들어가지 않고, 피하리다.”하고 사죄하였다. 그로부터 나라 풍속에 처용의 화상을 문간에 붙여서 역신의 해를 피하곤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