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과 금오신화 (김시습 작가론)
- 최초 등록일
- 2007.01.09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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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시습 작가론 리포트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한국 고소설이 언제 어떤 기원으로부터 발생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가 그 초기적 성취의 뚜렷한 결정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전기적(傳奇的)특성을 보이면서도, 현실주의적 지향이 엿보인다는 평을 받는 그의 소설은 우리나라 소설 문학 발흥(勃興)의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흔히들 작품에는 그 작가의 의식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금오신화』도 이러한 면에서 그의 처지와 심정이 담겨있다고 평가받는다. 여기서는 이러한 점을 거슬러 올라가 (작품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그의 삶과 내면세계를 밝힘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 김시습을 미흡하나마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본론
- 신동(神童) -
어려서의 김시습은 신동(神童)이라 하여 그 이름이 당시 왕이었던 세종에게까지 닿은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인재였다. 그는 매우 영민해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당시의 이데올로기였던 유학(儒學)에 열중했다. 그러나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얘기한다면 이와 같은 ‘신동’의 이미지는 수학기(修學期)로 제한된다.
- 방랑자(放浪者) -
김시습의 삶은 곧 방랑의 삶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그 당시 이단(異端)으로 여겨지던 불교에 발길을 옮기며 그의 삶은 큰 변화를 겪는다.
김시습의 삶이 방랑의 삶으로 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세조가 왕위를 찬탈(簒奪)한 사건이었다. 그의 사상의 근간인 유학에서의 가르침은 충신(忠信)과 덕의(德義)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바와는 전혀 반대로 전개되는 불합리한 세상은 그에게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또한 이 일이 있기 전, 자신을 지켜주던 어머니와 외숙모 ․ 아버지의 부재는 한창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청소년기에 심리적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그에게 어린 나이에 홀로 설 수 있는 방법은 유학의 뜻에 따라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임금을 모시고 자신의 뜻을 세우는 데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아껴주던 세종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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