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7.01.0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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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승로의 사상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한 글입니다.
길지 않고 간략하니까 참고하시기 편하실껍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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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최승로(927~989)는 신라 6두품인 음함의 아들로서 신라가 고려에 항복할 때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들어왔다. 일찍부터 유교경전에 밝았으며 광종때에는 국가의 문한을 맡아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짓기도 하였다.
성종이 경관5품 이상에게 시정의 득실을 논하게 하자, 이에 응하여 장문의 개혁안을 올렸다.
이 상소문은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에 이르는 5조의 정치에 대하여 잘잘못을 본뜰 것과 경계할 것을 성종에게 권하기 위한 '오조 정적평'과 당시의 구체적인 시무책으로 제시된 '시무 28조'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재 28조 중 22조가 전해지고 있다. 최승로는 성종으로 하여금 이상적인 군주로서의 자질을 갖출 것을 권하였다. 군주는 신하들을 예로써 잘 접대하여 공경하고, 참언을 멀리하며 사악한 자를 주저없이 제거할 수 있는 넓은 포섭력과 깊은 통찰력을 가지며, 동시에 유교적 정치인며에 투철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왕권이 지나치게 강대해져도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광종과 같은 전제주의 군주에 극력 반대하였으며, 또한 권신에 의해 정권이 독점되는 것도 맹렬히 비판하였다. 정치형태로서는 중앙집권체제를 강조하여 상주하는 외관을 파견할 것과 지방의 호족세력을 억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현실 정치는 유교에 토대를 두어야 하고, 불교는 수신의 근본이며 내생을 위한 것이라고 보면서, 불교의 폐단에 대해 통렬한 지적을 하였다. 그리고 엄격한 신분관을 견지하여, 귀족관료들의 권위와 특권을 강하게 옹호하였다. 또 국방의 중요성과 오아의 올바른 행위, 상벌과 권선징악을 통한 정치, 중국에 보내는 사신의 수 감소, 사무역 금지 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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