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진출기 김종직과 김굉필
- 최초 등록일
- 2006.12.25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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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종대 사림진출기에 시대상황과 김종직과 김굉필의 현실인식을 비교한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시대적 배경
2. 김종직의 생애와 현실대응
(1) 김종직의 생애
(2) 김종직의 현실대응
3. 김굉필의 생애와 현실대응
(1) 김굉필의 생애
(2) 김굉필의 현실대응
Ⅲ. 결 론
본문내용
(2) 김굉필의 현실대응
김굉필은 김종직의 학문과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김종직은 사장학과 경학을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하고 그 양면에서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발휘하여 당대에서는 크게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현실대응방식과 결합되면서 후대에서는 물론 당대에서조차 그에 대한 평가절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런 스승의 일면과는 달리 김굉필은 언제나 경학을 최우위에 놓고 전심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있었다. 즉 그는 치인(治人)이 아닌 수기(修己)쪽에 전심을 다하였다. 물론 41세에 이르러 출사하게 되는 것은 성리학의 이념과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뒤늦게나마 치인 쪽에도 유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굉필은 소학으로 기초를 만들고 대학을 통해 치평술을 익혔으며, 유교의 이상인 왕도정치, 도학정치이자, 요순삼대지치를 이루려고 하였다. 그것은 그 당대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하였고, 중종조에 이르러 그의 문인인 조광조, 김안국이 이끄는 기묘인에 의해 어느 정도나마 실현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유봉학, 2005, 『한국문화와 역사의식』, 신구문화사
이병휴, 2005, 「조선전기 사림파의 추이 속에서 본 김굉필의 역사적 좌표」, 역사교육학회
이병휴, 2005, 「15세기 후반, 16세기 초의 사회변동과 김종직 및 그의 문인의 대응」, 『역사교육논집35』, 역사교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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