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운동사]-1980년대부터
- 최초 등록일
- 2006.12.19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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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87년 6월29일,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항쟁에 대한 항복선언을 발표하자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전두환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거리를 휩쓸던 민주화 투쟁이 진군을 멈추었고, 전국 대도시를 뒤덮었던 최루탄 가스도 가라앉았죠. 그러나 정지는 잠시일 뿐, 일주일도 못돼 이러한 정치적 정적은 깨졌고 또 다시 투쟁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주역이 바로 노동자들입니다. 노동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폭발적인 파업투쟁에 나선 겁니다. 노동자들은 1987년 6월29일부터 10월31일까지 총 3,235건의 파업을 벌였고, 이시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숫자는 122만 5천여명에 이르렀습니다.
목차
1987년 이후의 노동운동
활화산 같은 87노동자 대투쟁의 폭발
조직 급증과 민주노조진영의 새로운 구축
본문내용
1987년 6월29일,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항쟁에 대한 항복선언을 발표하자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전두환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거리를 휩쓸던 민주화 투쟁이 진군을 멈추었고, 전국 대도시를 뒤덮었던 최루탄 가스도 가라앉았죠. 그러나 정지는 잠시일 뿐, 일주일도 못돼 이러한 정치적 정적은 깨졌고 또 다시 투쟁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주역이 바로 노동자들입니다. 노동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폭발적인 파업투쟁에 나선 겁니다. 노동자들은 1987년 6월29일부터 10월31일까지 총 3,235건의 파업을 벌였고, 이시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숫자는 122만 5천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거대한 폭발의 발화점은 7월5일 울산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노조결성과 파업투쟁이었죠. 파업투쟁은 현대그룹이 진을 친 울산을 소용돌이로 만들며 마산, 창원, 구미, 대구, 포항을 거쳐 내륙의 광산지대, 호남, 중부의 경공업지역을 휩쓸고 지나갔고, 수도권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8월에 들어서면서 전국은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으로 뒤덮었어요. 그러나 8월 말에 가까워지자 총자본은 노동자 투쟁을 ‘불순한 좌경용공세력이 개입한 것`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8월28일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의 장례식을 계기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구속하고 파업을 파괴하였죠. 그리하여 노동자대투쟁은 9월 말에 이르면서 크게 위축됐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