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작품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6.12.18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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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맞은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생 애
2. 실학이란?
3. 박지원의 사상
(1) 당시의 사회상
(2) 철학사상
(3) 사회사상
(4) 경제분야
(5) 문학사상
3. 대표작
(1) 열하일기(熱河日記)
(2) 호질(虎叱)
(3) 예덕선생전
(4) 허생전(許生傳)
4. 맺음말
본문내용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商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樊於期)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허생의 상행위(商行爲)를 묘사하는 가운데 부국이민(富國利民)의 경제사상과 건전한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내세우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박지원은 허생을 통하여 18세기 조선 봉건사회의 지배계층의 모순에 찬 생활모습을 폭로 비판하고, 현실의 모순을 보고 도피하거나 방관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해나가는 모습에서, 새로운 여명기에 접어든 근대사회의 새로운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 맺음말
연암은 신분제도부터 경제 사회 각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유학자인 점에서 결코 윤리 도덕의 문제를 경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문제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번잡한 이론을 세우는 데 매진하지는 않았다. 연암을 비롯한 당대 실학자들의 특징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에 있어서 어느 쪽에 더 힘을 두었는가이며, 그것이 바로 실학자와 주자학자들과 구별케 하는 요소이고, 그들의 학문만을 특별히 실학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들이 실학, 즉 조선 후기 실학이야 말로 ‘실학’이라 칭하는 데 손색이 없는 것으로, 그것은 당대의 역사 발전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평가의 차원을 넘어, 낡은 전통에 대한 비판 작업의 훌륭한 모범으로서 끊임없이 되새겨질 필요가 있다. 물론 그들의 이상이 당대의 사회 속에서 실현되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의 실용주의 사상과 이상들이 근세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작용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고루한 유교의 관념논리가 허구임을 간파하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 하에서는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밖에 없고, 일시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친 민중민족 지도자의 귀감으로서의 평가를 받을만하다. 당대에 제한되지 않고 역사 전반에 걸쳐서, 국가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은 세계 평화와의 연대성 위에서만 기대할 수 있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라 할 수 있으며, 연암은 그러한 사실을 간파한 선각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참고 자료
김일렬, 『고전소설신론』, 새문사, 1991.
김지용,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4.
이창국, 『연암 박지원의 교육사상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1987.
정익섭, 「박지원의 생애와 사상」, 『연암연구』, 계명대출판부,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