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척사는 과연 시대착오적인 사상인가?
- 최초 등록일
- 2006.12.14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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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교육과에서 한국근대사 수업시간에 구한말에 있었던 위정척사운동이 과연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낱 수구적인 사상이기만 했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레포트를 작성한 것입니다.
사료를 많이 제시하여 유용합니다.
근대사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A+ 자료입니다. 훌륭한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목차
■ 위정척사
■ 위정척사 운동의 의미
■ 사료
- 이항로의 위정척사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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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위정척사
조선 후기 유교적인 질서를 보존하고 외국세력 및 문물의 침투를 배척한 논리 및 운동으로 정학(正學)을 지키고 사학(邪學)을 배척하는 유교의 벽이단(闢異端)이념을 대변하는 사상이다. 조선왕조체제의 봉건적 질서 유지를 위한 이념이었던 공(孔)․맹(孟)․주(朱)의 학통을 유일한 정학으로 보고 양명학(陽明學)을 비롯한 불교(佛敎)․도교(道敎)․서학(西學) 등 모든 다른 사상과 학문을 이단적인 사학이라 규정하여, 정통적인 정학은 지키고 외래적인 사학은 물리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말 서학의 전래를 계기로 외세의 침략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반외세운동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다.
또한 위정척사 사상은 이항로가 "천하의 커다란 시비․분별이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화(華)와 이(夷)의 구분이며, 둘째는 왕(王)과 패(覇)의 구분이며, 셋째는 정학과 이단의 구분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를 화, 서양을 이로 보며, 성리학을 정학, 천주교를 이단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구분의 밑바닥에는 중화․사대 사상이 깔려 있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에 부딪쳐 있는 당시 상황에서 위정척사는 주체의식과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을 고취시킨 사상으로 발전했다.
특히 문호개방 이후 개화사상이 고조되고 정부의 개화정책이 외세의 침투에 주체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어 주로 성리학을 신봉하는 보수적인 유생들이 주도해 나갔는데, 그 논리 및 운동은 외세의 침투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전개되었다.
먼저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에는 이항로(李恒老)․기정진(奇正鎭) 등이 서양세력의 침범은 국가 존망의 위기를 조성한다고 주장하면서 서양문물을 배척하고 통상에 반대하였다.
그리고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뒤에는 최익현(崔益鉉)이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을 내세워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고, 척사의 대상이 일본으로 확대되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국사(하)』, 교육부, 2000
국사편찬위원회, 『국사교육자료집』, 교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