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1차 세계대전과 미국
- 최초 등록일
- 2006.12.11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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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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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미국인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대두된 사회개혁 문제에 몰두해 있는 동안, 유럽에서는 영토와 이권의 팽창이라는 제국주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3국 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로 이루어진 3국 협상세력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전쟁으로 돌입할 위기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한 사건으로 인하여 전쟁 발발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사라예보 사건’이다. 1914년 6월 29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중이던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드 황태자 부처가 세르비아인 민족주의자에 의해 암살된 사건이다. 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독일 정부로부터 무조건 지원을 약속받고 그 해 7월에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그 해 8월 13일 독일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로서 제 1치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 미국은 그 전쟁과 거리가 먼 것같이 보여 중립을 선언했으나 곧 경제적, 정치적 영향을 느끼게 되었다. 1915년에 이르자 당시 약간 불황 속에 있던 미국의 산업이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탄약과 각종 물품 주문을 받으면서 상당히 이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느 전투 이후 승기를 놓친 독일이 영국 여러 섬 주변의 수역에서 모든 상선을 파괴하겠다고 공언하자 사태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1915년 봄 영국 기선 루시타니아 호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당해 침몰 당했을 당시 배에 타고 있던 1200명중 128명의 미국인이 희생되자 미국은 독일을 비난했다. 윌슨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독일의 무자비한 행위를 보고 만약 독일이 승리한다면 유렵에 군국주의 지배를 가져오고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1917년 2월에 독일이 멕시코에게 ‘만약에 독일이 미국과 전쟁을 할 경우 멕시코가 독일을 지원해 준다면 1848년에 미국에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치머산 각서(Zimmermann note)’가 폭로되며 미국의 태도가 독일에게서 완전히 돌아섰다. 게다가 그 해 5척의 미국 선박이 침몰당한 후인 1917년 4월 2일에 윌슨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요청하였다. 1917년 4월 미국이 참전을 경정했을 때는 전반적인 전쟁 준비가 잘 되지 않아 우선 2만 여 병력을 프랑스로 급송하였다.
참고 자료
*이구한 엮음, 이야기 미국사, 청아 출판사, 1995년 출판.
*최혁순 편저, 이것이 미국이다, 합동국제문화센터 출판부, 1997년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