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6.11.28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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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인사 답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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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1월 11일 화요일 한문학사 수업의 연장으로 가야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해인사 답사를 다녀왔다. 늦가을의 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교수님 이하 학우들은 아침 일찍 해인사로 출발하였고 피치못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나는 정오쯤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아쉽게도 해인사 경내만 둘러보게 되었다.
이번 답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가져간 참고서적에 의하면 해인사는 불교 교단에서는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라 하여 교단형셩의 기본요소로 삼고 있는데 불보종찰인 통도사, 승보종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법보종찰로서 명성을 떨치는 절이라 하였다. 해인사는 신라 40대 애장왕 때 순응과 이정이 창건한 고찰로 재미있는 전설이 있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애장왕비가 전신에 심한 피부병이 걸려 죽게 되었는데 어느날 밤 왕의 꿈속에 가야산 산신령이 나타나서 가야산에 가면 왕비의 병을 고칠 약을 구할 수 있다하여 왕이 즉시 가야산으로 사람을 보냈는데 사신들이 가야산에서 두 사람의 도승을 만나 왕비의 병을 고칠 처방을 얻어 왕비가 살아나고, 왕이 기뻐서 그 두 도승의 소원에 따라 가야산에 절을 짓고 이름을 해인사라 하였는데 그 두 도승이 바로 순응과 이정이라 하였다. 어쨌든 그런 전설을 뒤로 하고 해인사에 들어서서 봉황문과 해탈문을 지나 왼쪽편을 보니 커다란 종이 있었다. 그 종의 윗부분을 자세히 보면 굴뚝과 흡사한 것이 있었는데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삼국유사에 만파식적이라 하여 세상의 풍파를 그치게 하는 피리라는 기록이 있으며 그 굴뚝같은 것이 우리나라 종의 특징이라 하였다.
그리고 구광루를 지나 3층 석탑을 보았는데 이 석탑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불상을 봉안한 불탑이라고 하였다. 그다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왠지 모를 기품이 서려있는 것 같은 느낌에 잠깐 취해있던 나는 그 석탑을 둘러싸고 있는 석책이 우리 고유의 방식이 아니며 석탑의 하층기단이 일제때에 새롭게 놓여져서 사실 국보급임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교수님의 설명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3층 석탑의 앞쪽에는 이마를 맛대고 예를 올린다는 뜻의 정예석과 석등이 있었는데 석등 또한 신라 때의 모습에서 훼손이 되었고 석등과 정예석의 위치가 바뀌어서 정예석, 석등, 석탑의 순으로 배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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