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6.11.2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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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구한말-일제시대에 거쳐 변화되는 기생신분에 대한 고찰.
1차사료 중심으로.
목차
1. 조선시대의 기생
2. 대한제국시기의 기생
3. 일제시기의 기생
본문내용
1. 조선시대의 기생
조선시대 기녀집단은 지배계급과 독특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기녀들은 호의호식하는 특수천민으로서 같은 처지의 다른 집단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권력과의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배계층의 성적 요구에 대한 육체의 제공과 그 지속적 담보를 통한 긴밀한 상호의존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대부들과의 잦은 회동과 지근거리에서의 은밀한 보좌가 군주국가 유지의 또 다른 변수로 기능했다는 사실이다.
기생들이 지배집단을 등에 업고 자신들과 소생의 신분상승이나 삶의 변화를 도모하여 행정 간여와 정치적 조종 등 남성중심의 일방적 정치권력행사에 거꾸로 영향을 가함으로써 부정적 폐단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들 전부가 이 같은 행위에 종사하는 집단적 매매춘 단위로 작동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느 경우든 기생의 본분은 습악(習樂)을 기본으로 삼고 남성지배집단의 국가적, 의례적 수요와 공식적 기능수행의 절대적 자원으로 존재하면서 공인된 즐거움을 집전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특수천민으로 그들 대부분은 남성들을 유혹할 수는 있으되 스스로 억제하면서 권력의 향배를 순식간에 파멸과 전락의 길로 유인할 수도 있는 마력적 매력의 원천으로 살아나가고 있었다.
절개와 기개의 운용, ‘나섬’과 ‘들어섬’의 시기 조절, 남성의 강력한 요구를 뿌리칠 수 있는 조절능력과 인위적 절제의 전략 유지, 기예 집단의 특수성과 성 정치적 매력의 지속 등 대표적 여성 천민이면서도 자신들의 ‘여성성’을 늘 정치화할 수 있었던 그들의 직업적 개성은 바로 그들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자 자원이었던 셈이다.
2. 대한제국시기의 기생
위 기사에서는 과거 일급관기가 중심이 되었던 궁중 진연행사를 위해 ‘삼패’를 모집한다는 표현에서 ‘삼패’가 관기의 역할을 대체하는 당대의 정황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과거 진연의 정재 여령 중 노래를 맡은 ‘가차비’ 역할을 삼패 가운데서 뽑아 ‘노래하는 기생’으로 삼고, 여령 가운데 춤을 추는 무차비를 ‘노래 못하는 삼패’에게 맡겨 여령으로 삼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관기 중심의 여악제도가 점차 무너져가는 1902년 현실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참고 자료
박종성, 「조선 기생의 정치적 안주와 조종:『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과학과 문화』제1권 1호, 2004
서지영, 「식민지 시대 기생 연구: 기생집단의 근대적 재편 양상을 중심으로」,『정신문화연구』제28권 2호, 200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