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6.11.27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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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범일지 줄거리 요약과 감상문
목차
Ⅰ.줄거리
Ⅱ.어머니가 본 아들로서의 김구.
Ⅲ.비판
본문내용
Ⅰ.줄거리
1876년 안동 김씨 김자점의 후손으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창암이였고 15살 때 서당에 다니면서 선생의 수준에 회의를 느낀다. 18살 때는 호동 오응선을 찾아사 동학에 입도하고 김창수로 개명한다. 동학 입도 몇 달 후 연비가 수천명이 되어 ‘아기접주’ 라는 별명을 얻는다. 9월에 황해도 15명의 접주가 회의하여 거사를 결정하고 백범은 팔봉접주로 선봉에 서나 해주성 공격에 실패하고 후퇴한다. 12월에 홍역을 치루는 와중에 같은 동학군 아동엽의 공격으로 대패하고 피신해 잠적한다.
20살때는 김형진을 만나 청국기행을 가 만주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21살 때 다시 중국으로 떠났으나 단발령의 정지와 삼남 의병 소식을 듣고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3월 9일 치하포에서 일본인 쓰치다를 죽이고 해주옥에 투옥된다. 인천감옥으로 이송되나 미결수로 감옥생활을 하고 서양 근대 서적들을 읽게 된다. 1898년 3월에 백범은 탈옥하나 부모님이 대신 투옥된다. 삼남으로 도피한 그는 마곡사에서 중이 된다. 이듬해 봄에 마곡사를 떠나 부모님을 만나고 평양에서 걸시승 생활을 한다.
백범 구명운동을 벌였던 강화 김주경을 찾아가나 만나지 못하고 동생 진경의 집에서 3개월동안 훈장질을 한다. 정체를 숨기다가 김주경의 친구 유완무와 그의 동지들을 만난다. 29살12월에 최준례와 결혼하고 경성 경신여학교에 입학시킨다. 그 후로 계속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신교육을 실시하기로 하고 고향에 돌아와 교육사업에 매진한다. 해서교육총회 학무총감으로 황해도 각 군을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하며 그 시기에 나석주, 이재명 등과 만난다.
1910년에는 서울에 도독부를 설치하고 만주 이민과 무관학교 창설 등을 결의한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되어 종로구치소에 이감되었다가 징역15년의 판결을 받고 서대문감옥으로 이송된다. 그곳에서 연하를 백범으로 고친다. 인천으로 옮기어 매일 쇠사슬을 묶인채 인천항 축항공사에 동원된다.
참고 자료
백범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