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발표하면서 박수까지 받았던 리포트입니다.
625전쟁에 대한 세부사항들과 쟁점들까지 폭넓게 조사하였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Ⅰ 연구사 정리와 논점
Ⅱ 원인과 전개
냉전 기원론에서의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6․25 기원론에서의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신전통주의와 신수정주의
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
휴전협정 조인
Ⅲ 결과와 영향
강대국에 미친 영향
한민족에 미친 영향 - 북한
한민족에 미친 영향 - 남한
Ⅳ 구술사를 통해 본 6․25전쟁의 영향
발발
점령
피난
징집
본문내용
6·25 전쟁은 한국 현대사가 경험한 최대의 비극이었으며, 국제적으로도 2차 세계대전 후 시작된 냉전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1949년부터 38°선을 경계로 고조되던 갈등이 결국 1950년 6월 25일 전면전이 된 직후부터 6·25 전쟁의 기원과 주도자, 성격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 되었다. 그러나 이 논쟁은 처음부터 전쟁과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심리전·선전전 차원에서 벌어졌고, 이데올로기 전쟁의 양상을 나타냈다.
6·25 전쟁에 대한 접근은 발발 당시부터 해외에서는 각 정부당국, 학자, 언론 등에 의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미 1965년에 이르면 신문기사를 포함해 6·25 전쟁에 관한 저술은 1만 편을 넘어 선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해외의 연구 성과에 대한 정리, 소개를 중심으로 하는 미미한 형편에 불과하였다. 종전 후 오래 동안 6·25 전쟁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통제되고 봉쇄된 이데올로기의 영역 속에 위치한다는 선입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기존의 6·25 전쟁에 대한 연구의 핵심은 그 기원과 배경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로 구분된다. 전쟁 발발 원인에 대한 전통주의적 시각은 공격적이며 팽창주의적인 소련의 대외정책에서부터 전쟁이 발발했다는 시각으로 스탈린주도설과 소련·중국 공모설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초기 수정주의의 시각은 미국의 제국주의정책에서 6·25전쟁의 기원을 찾고 있는데, 미국과 남한이 공모하여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설이다. 이같은 1970년대 이전의 논쟁은 전쟁 개전의 책임에 많은 비중을 두었고, 특히 한반도의 내부적 경향·요소보다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의 외적 영향·결정력에 강조점을 둔 것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 새로운 경향이 보였다. 그것은 국제정치적 문제보다는 한반도 내부의 요인들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서울점령 3일 동안 남진하지 않고, 협상을 통한 통일을 시도하려 했다는 주장이나, 빨치산 투쟁의 연장이라는 주장, 북한 주도의 내전으로 보는 입장들이 그것이다. 한편 6·25전쟁이 내전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나 국제냉전의 영향과 복합되면서 일어난 국제적 내전이라는 입장도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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