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 대해 조사하고 내용정리하기
- 최초 등록일
- 2006.11.17
- 최종 저작일
- 2006.06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청계천의 역사, 주요 다리에 대한 설명 등
청계천을 역사적, 사회적 관점으로 보고
그에 대해 조사하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들 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2005년 10월, 캄캄한 지하에서 잠들어 있었던 청계천이 2년여의 복원 공사 끝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청계천이 복원되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지난 10월 개통 된 뒤 많은 사람들의 쉼터로 애용되고 있다.
청계천은 서울의 종로구와 중구를 경계로 하여 흐르고 있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10.84km, 유역면적은 약 59.83㎢이다. 동쪽에서 쪽으로 흐르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하천과 달리 청계천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특징을 가졌다. 복원된 청계천 위에는 22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으며 다리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우리가 청계천을 찾아갔을 때는 비가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항상 갈 때마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적한 청계천의 또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청계천에 대하여 모두 조사하는 것은 너무나 막연한 것이었다. 청계천의 다리만 해도 22개이며 그 외에 볼거리들을 모두 조사한다면 아마 하루는 꼬박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청계천을 역사적인 관점과 사회적인 관점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또한 22개의 다리들과 많은 볼거리들을 다 조사하지 않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다리들과 볼거리들을 위주로 답사활동을 펼쳤다. 우선 청계천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원래 ‘청계천’의 이름은 ‘개천’이었다. 서울이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자연 상태의 하천이었다. 봄이나 가을에는 비가적어 항상 마르기 일쑤였고 여름 장마철에는 항상 홍수가 났던 골칫거리였다. 결국 조선시대 태종은 하천 양안을 돌로 쌓아 청계천을 재정비했다. 그 뒤 청계천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이 두 차례의 전란을 겪고 난 후 또 다시 골칫거리로 대두 되었다. 전쟁 후 난민들이 도성으로 몰려들어 청계천 주변에 정착해 밭을 경작하며 생긴 토사들로 청계천의 수로가 막혔으며 막대한 생활하수도 청계천으로 흘러들어 토사들로 청계천이 메워졌다. 결국 영조는 준천사를 설치해 개천에 쌓여있는 토사들을 걷어내고 무너진 다리들을 보수했으며 개천 양안을 석축해서 수로를 곧게 바로 잡았다. 준천이 끝난 뒤 영조는 왕세손(정조)과 함께 광통교에 나가 완성된 석축을 살펴보고 역부들의 공로를 치하했는데 이것으로 보아 영조가 골칫거리였던 청계천을 준천하는 이 사업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