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의작가론
- 최초 등록일
- 2006.11.12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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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골의 작가론
생애, 주요 작품, 문학적 가치 등
목차
1. 고골의 생애
2. 작품의 세계
뻬쩨르부르그 산문
코
검찰관
죽은 혼
3. 고골의 문학적 가치
본문내용
소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고골은 다채로운 농민생활과 카자흐 전통, 풍부한 민속 문화가 전래되어오던 우크라이나의 시골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12세에 (1821년 5월) 매우 진취적이며 개방적인 네진의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휴머니즘에 입각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킨 김나지움에서 고골은 매우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느끼며 공부할 수 있었다. 비록 학업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학과 공부 외에 여러 방면에 소질을 보였다. 바이올린과 미술, 문학과 연극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연극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학교 연극 공연에 배우로 출연한 그는 그의 코믹한 연기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여배우역을 매우 잘 소화했고 무대장치 같은 연극 활동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고골의 꿈은 따로 있었다. 그는 항상 국가를 위하여 무엇인가 봉사를 하길 원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법률학 교수 N.벨로우소프의 영향을 받아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법률가가 되고자 했다.
뻬쩨르부르그에서의 삶
19세에, 고골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의젓한 관리가 되고픈 원대한 포부와 도시에 대한 동경심을 가득 안고서 수도 뻬쩨르부르그로 갔다. 하지만 뻬쩨르부르그는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그곳은 돈과 연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물질만능 도시였다. 그는 관직 진출에 실패한 후 시인으로 이름을 빛내야겠다고 생각해 고등학교시절에 썼던 장편시 ‘간스 큐헬가르쩬’을 자비를 들여 출판했다. 그러나 그 또한 실패하자 고골은 심리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팔리지 않는 시집을 모두 사들여 불태워버린 뒤 미국으로 건너갈 계획을 세운다. 고골은 독일로 갔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 러시아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보리라 결심했다.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온 고골은 간신히 관리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내무성, 출판국, 궁내성으로 이어진 2~3년간의 말단 관리 생활은 자존심이 강한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어려운 삶이었다. 하지만 후에 하급관리의 세계는 그의 작품 속에 생생히 형상화되는 귀중한 문학적 자료가 되어주었다.
▶ 고골의 초기 작품 : 우크라이나 산문
푸쉬킨의 조언과 ‘바사브류크, 혹은 이반 쿠팔라 전야’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자 4편의 단편 ‘소로친쯔이의 장날’, ‘이반 쿠팔라 전야’,‘오월의 밤, 혹은 여자 익살자’,‘분실된 서류’를 엮어 [지카니카 부근 농가에서의 밤] 제 1부를 1831년에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일약 유명작가가 된 고골은 곧이어 ‘크리스마스 전야’,‘무서운 복수’,‘이반 표도로비치 쉬포니카와 그의 숙모’,‘마법에 걸린 땅’을 수록한 제 2부를 발표했다. 민담에 기초한 작품으로 확실한 데뷔를 마친 고골은 여세를 몰아 1835년에 ‘미르고로드’를 발표했다. ‘미르고로드’는 순수 창작집으로 단편 ‘옛 기질의 지주들’, 중편 ‘타라스 불리바’, 단편 ‘비이’와 ‘이반 이바노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가 어떻게 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작품은 동화와 현실세계가 교
참고 자료
고골:환상과 현실의 영원한 방랑자 -건국대학교출판부
대지의 숨 : 러시아의 숨표들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 가람기획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민음사
러시아문학의 이해 : 푸시킨과 고골 - 민음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