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06.11.11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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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진그룹 조중훈회장의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생애
2. 사업의 시작
창업기
도약기
제2의 도약기
성숙기
제2의 성숙기
3. 경영이념
4. 배울점
본문내용
Ⅰ. 생애
“모르는 것에 섣불리 손을 대선 안 되고, 남들이 한다고 따라하면 사업이 아니라 얌체짓이다”
그는 1920년 2월 11일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는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고 중국침략을 목표로 우리나라를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병참 기지화 하는 때였다. 그의 부친 조명희씨는 서울에서 10대째 살아온 토착지주로써 그는 어린 시절 상당히 부유하게 자랐다. 부족할 것 없었던 조중훈의 가정환경은 1930년대 중반 부친이 전답을 팔아 서울 종로에 큰 직물점을 차리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부친은 종로 일대의 포목상들이 수입이 괜찮다는 친구의 얘기에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었고, 때 마침 경제 공항에 이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화재까지 일어나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를 맞고 말았다. 갑자기 집안의 가세가 기울자 그는 휘문보고를 중퇴하고 국립 해원양성소(지금의 해양대학교 전신) 기관과에 입학하여 17세 때 졸업 후 일본 고베에 있는 선박회사에 취직하여 선박제조기술을 익혔다. 식민지 국가의 청년이 이국땅에서 겪었을 고초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조중훈 회장은 이를 다 견뎌내고 조선기술을 익히며 돈을 벌고 밤에는 독학을 하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가 이같이 평생 외골수같이 운송업만을 고집한데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의 영향이 컸고, 그런 그의 신념이 우리나라의 수송업계의 큰 인물을 만들어 낸 바탕이 되었다.
Ⅱ. 사업의 시작
“韓進 - (한민족의 전진) 한국의 진보를 위해서 노력 하겠다”
1942년 조중훈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서울 효제동에 ‘이연 공업사’란 보링공장을 운영하였으나 당시 군수사업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제의 기업 정비령에 의해 이듬해 문을 닫고 말았다.
그 후 3년이 지나 1945년 해방을 맞이한 그 해 11월 우연히 인천 선창가를 거닐다가 화물선이 실어오는 각종화물을 부두에 내리고 서울로 나르는 사업에 착안하여 인천 해안동에 ‘한진상사’의 간판을 내걸고 그의 수송 외길 인생에 뛰어 들었다. 이연공업사를 정리한 자금등을 이용해 트럭 한대를 장만하고 화물운송업을 시작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