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 최초 등록일
- 2006.11.09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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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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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 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 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은 아곡鵝谷이라 하는데, 장차 그곳 서향西向의 언덕에 장사 지내려 한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 방도가 없어, 어린 것들과 계집종 하나, 솥과 그릇, 상자를 이끌고 강물에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함께 떠나가니, 내가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가운데서 이를 전송하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잖을 빼니, 누님은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골이 나서 울면서 먹으로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금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게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지금에 스물 여덟 해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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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孺人十六歸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鵝谷, 將葬于庚坐之兆. 伯揆旣喪其賢室, 貧無以爲生, 挈其穉弱, 婢指十, 鼎鎗箱簏, 浮江入峽, 與喪俱發, 仲美曉送之斗浦舟中, 慟哭而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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