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황실재정운영
- 최초 등록일
- 2006.10.30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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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시기 조선의 황실 재정운영에 관해.
목차
1 .통감부시기 황실재정의 운영
2 . 수입의 불안정과 재원의 상실
3 . 황실 재정의 저항적 운영과 지출 항목의 변화
본문내용
1 .통감부시기 황실재정의 운영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1904년부터 한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일제의 대한식민지화 작업은 3차례의 ‘한일협약’과 함께 단계적으로 상화되었는데, 재정고문과 외교고문의 파견, 통감부의 설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일본인 관리의 대거 기용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제의 침략에 따라 ‘大韓(덧말:대한)國(덧말:국)國制(덧말:국제)’제정이후 크게 강화되었던 황제 고종의 권력이 약화되는 한편 고종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행사하는 기구로서 확대했던 궁내부도 축소되기 시작했다. 정부재정역시 통감부와 재정고문에게 장악되어 고종의 손길이 미치지 않게 되었다.
만성적인 세입 부족상태에 시달리던 정부재정과 달리 많은 재원이 이속되는 1900년경부터 여유자금을 축적하고 있던 황실재정도 1904년 이후 이러한 일제의 침략에 따라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황실재정의 수입은 정부 재정에서 지급되는 皇室(덧말:황실)費(덧말:비)와 황실 자체의 수입으로 이루어졌으며 황실재정을 담당하는 기관도 여전히 궁내부에 속한 (1905년 3월 이전에는 會計(덧말:회계)院(덧말:원))와 經理(덧말:경리)院(덧말:원)(1905년 3월 이전에는 內藏(덧말:내장)院(덧말:원))이었다. 그리고 내장사는 정부재정에서 지급되는 황실비를 관리하고 경리원은 황실에 소속된 재산과 수입을 관리하는 방식에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정부 재정이 완전히 일제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있었을 뿐 만 아니라 황제의 강력한 신임을 바탕으로 황실재정 운영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던 반일적인 인물인 內藏(덧말:내장)院(덧말:원)卿(덧말:경) 李(덧말:이)容(덧말:용)翊(덧말:익)이 퇴진하고, 일제의 황실재정 해체기도 역시 집요하게 계속되었기 때문에 황실재정은 내면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에 따른 황실재정의 해체와 황실 재산의 박탈은 황실재정 자체를 사실상 소멸시켜버렸다.
그러나 행정부가 통감부로 대표되는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황실은 국내외의 반일 저항 세력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국가의 자주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비밀외교 활동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교육비 등 정부 제정에서 담당해야 할 비용까지 일부 지급하는 등 황실재정의 일정 부분을 일제의 식민지화 정책에 저항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황실재정 운영에서는 일제의 식민지화를 위한 정부재정 운영에 맞서는 저항적인 면모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