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 조사당에 대한 연대 추정
- 최초 등록일
- 2006.10.2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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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륵사 조사당에 대한 연대 추정
목차
● 서론
○ 목적
● 본론
○ 신륵사란?
○ 신륵사의 조사당
○ 건축의장 요소
▪ 기단
▪ 초석
본문내용
● 서론
○ 목적
▪ 건축 의장요소의 시대별 변화 상황(例: 공포의 양식)을 보고 사찰 건물의 시대를 추측할수 있다.
▪ 사찰 건물의 시대를 추측하면서 그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을 배운다.
● 본론.
○ 신륵사란?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우왕 2년(1376)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조형물은 모두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것이다. (한국전통건축사이트 인용)
○ 신륵사의 조사당
조사당은 조선초기 예종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고려말
기울어 가는 불교계에 한가닥 빛이 되었던 소위 3화상(和尙)이라 불리는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덕을 기리고 또 그들의 법력을 승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중앙에 나옹, 그리고 좌우에 지공과 무학선사의 영정을 봉안해두고 있으며 또 목조(木造)의 나옹화상 독존(獨尊)을 안치했다.
사찰 경내에서 조사당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물이고, 다포계 팔작집으로서 특수한 건축의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 기단
조사당의 기단은 단층 장대석 기단을 하고 있다. 장대석 기단은 조선시대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기단으로 지금도 흔히 볼수 있는 형태이다. 단층기단이라 퇴물림(고려시대의 특징)을 볼수 없어 조선시대로 구분하였다.
▪ 초석
조사당의 초석은 미비하긴 하지만 꽃 모양의 원형 초석의 모양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초석들은 운두가 없고 주좌의 높이가 낮으며 초반의 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단순하고 장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다른 석조유적이 모두 화려해지고 장식적으로 바뀌는 것처럼 초석도 장식화 되었다.
참고 자료
그림으로 보는 한국 건축용어 / 김왕직 / 발언
한국건축의 역사 / 김동욱 / 기문당
인천▪경기도의 사찰/사찰문인 연구원/ 사찰문화 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