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시세계
- 최초 등록일
- 2006.10.1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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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석 의 시세계 레포트.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백석의 생애
2.시적 특성
3.문학사적 의의
Ⅲ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백석(白石)은 1930년 1월「그 母와 아들」이라는 소설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첫 선을 보인 뒤, 1935년 8월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 함으로써 시인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1936년 1월 시집『사슴』 1936년 1월 20일 시집『사슴』 을 선광 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짐
을 발행 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그럼에도 재북 시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석은 문학사적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월북, 재북 작가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백석 또한 월북 작가라는 오명을 벗고, 새롭게 작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럼 이제 백석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문학사적 의의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생애
백석(白石)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이며, 작품을 발표할 때는 백석이라는 필명을 애용하였다.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아,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安東)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하였다. 그는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며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다. 그의 시 「여승(女僧)」은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여우 난 곬족」과「고야(古夜)」등은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였다. 또한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여 일제 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 자료
한계전, 「1930년대 시 문학의 일반적 경향 」, 『1930년대 민족문학의 인식』서울, 한길사, 1990
김영익, 「백석 시문학 연구」충남 대학교 출판부, 2000
송 준, 『백석시 전집』학영사, 1995
김주언, 「백석시 연구」단국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