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천명`을 보고
- 최초 등록일
- 2006.10.13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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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농민혁명을 그린 음악극 천명을 본 후 기록한 감상문 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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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천명을 보기 이전까지는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작품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역사를 예술작품으로 만든 작품들이라고는 텔레비전을 통한 사극과 영화가 전부인 터라 무대공연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작품이 생소한 면도 있었고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이 난으로 치부되어오던 역사인식으로 인해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영상매체를 통해 보아오던 역사극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웅들의 전기나 흥미를 줄 수 있는 시대의 사실들을 소재로 삼고 있었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들을 보더라도 주몽이나 연개소문 대조영등 영웅들의 일대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렇듯 예술적 소재로써 소외되어오던 우리 역사인 동학농민혁명을 예술작품으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과제의 가장 큰 성과라 뽑을 수 있겠다.
첫 장면은 전봉준의 압송에서 시작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전봉준은 밀고에 의해 붙잡혀 조정에서 나온 법관이 그를 심문하는 장면으로 막이 열렸다. 우리가 그동안 교과서에 실린 사진으로 보아왔던 전봉준이 순창에서 잡혀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가 체포됨으로 민중에 의한 자주근대화를 위한 시도는 좌절되고 결국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아야했던 조상들의 한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다음으로는 당시 동학도로서 상황을 보다 가깝게 느껴지도록 해주는 인물인 복래와 그의 남편인 동혁이 등장하게 된다. 먼저 복래의 회상으로 전봉준을 처음 만나게 되는 보은집회의 장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보은집회 이전의 동학 공인을 위해 열렸던 공주집회와 삼례집회, 광화문 복합상소 등은 생략되어 있었는데, 이때의 집회는 교조신원의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에 척왜양의 기치를 전면에 내걸면서 종교적 성격과 더불어 정치적 성격을 띄어가게 되는 집회인 보은집회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듯했다. 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순차적으로 모두 담기는 어렵겠지만 보은집회 이전의 집회 특히, 삼례집회에서 전봉준이 전라감사에게 소지문을 제출하는 등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런 부분이 생략된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복래역을 맡은 안숙선씨는 이미 텔레비전을 통해 창하는 모습을 보아왔었는데 이렇게 국악적 요소가 주가 되어있는 작품이라 동학농민혁명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더욱 호소력 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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