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고수전쟁
- 최초 등록일
- 2006.10.11
- 최종 저작일
- 2006.01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과정에 대해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전쟁의 원인
수문제의 국서
1차 고수전쟁
2차 고수전쟁
수의 전략
패수전투
살수대첩
오열홀전투
전쟁의 결과
본문내용
전쟁의 원인
589년 수나라는 강남의 진을 멸망시킴으로써 400년간의 분열시대를 마감하고 통일된 중화문명권을 이루게 된다. 강력해진 중화문명권의 등장은 국제질서상의 패권다툼을 위해 고구려문명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단재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수전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세력과 세력이 만나면 서로 충돌되는 것이 공리요 정리다. 고대 동아시아에 있어서 비록 수많은 족속이 대립하였지마는 다 무무하고 미개한 야만족들이라 혹 한때 정치상 세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문화가 없었으므로 뿌리없는 나무와 같이 붕괴하는 날에는 다시 일어날 터까지 없어지거니와, 토착한 민족으로 오랜 역사와 상당히 발달한 문화를 가진 자는 지나와 조선이었다. 지나와 조선은 고대 동아시아의 양대 세력이니 만나면 어찌 충돌이 없으랴? 만일 충돌이 없는 때라면 반드시 피차 내부의 파탄과 불안이 있어서 각기 그 내부의 통일에 바쁜 때였을 것이다.(중략) 590년경에 이르러 우문씨의 제위를 빼앗은 수의 문제 양견이 진을 아우르고 전 지나를 통일하여 강대한 제국이 되어 지나 이외의 나라를 깔보았는데 북쪽의 돌궐이나 남쪽의 토욕혼은 다 쇠약하여 지나에 대해 신하의 예를 취하였고, 오직 동쪽의 고구려란 제국이 강성하여 지나에 대항하니 어찌 저 오만하고 자존한 지나 제왕이 참을 수 있는 일이랴. 이것이 수가 고구려를 침노한 첫째 원인이었다.
- 조선상고사 -
고구려는 무엇 때문에 수에 굴복하지 않았을까? 광개토대왕 이후로 고구려는 동방문명의 중심국가였다. 백제와 신라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의 남방원정때 고구려에게 굴복하였다. 한때는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저항하기도 했으나 백제 성왕이 신라에 의해 죽은 이후 혈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북쪽의 말갈과 거란은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고 동부여는 문자명왕때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바쳤다.
참고 자료
조선상고사
고구려의 발견 - 김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