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나는 이제 오랑캐의 옷을 입었소
- 최초 등록일
- 2006.10.1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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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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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책은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이릉이 소무에게 한 통의 편지가 이 글의 처음을 장식한다. 이것은 기원전 74년에 쓴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는 이릉이 소무에게 자신의 처지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경공 소무에게 한나라의 대접에 대해서 책망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처지를 변명을 한다. 5천기를 이끌고 고비사막을 넘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하의 배신으로 인해서 모든 군사를 잃고 사로잡히고 만다. 하지만 다시 이 치욕을 설욕할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릉의 장수됨을 본 선우는 권유하지만 이릉은 거절한다 하지만 고국에서 들리는 소리는 자신의 가족들이 족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자신을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편지로 소무와의 마지막 편지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이 부분을 보고 전체적인 내용이 참 궁금했다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부분도 많았다. 솔직히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북방민족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었다 . 그리고 북방민족에 대한 자료나 책을 접할 기회가 없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흉노와 한나라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된 것이 좋았다.
한과의 흉노의 관계는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한나라가 흉노에게 굴욕적인 관계로 지내고 있었다. 한나라는 기원전 220년 유방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한 왕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 한 고조는 득의양양했다 그리고 한달뒤에 흉노와의 끔찍한 관계가 시작된다. 흉노 조상은 하우씨의 자손으로 순유라 불렸다. 이들은 북방 오랑캐의 땅에서 거주하면서 가축을 방목하면서 생활했다. 그들은 평소에는 가축과 새를 사냥했고 전쟁이 나면 모두 싸웠다. 그것이 그들의 천성이었다. 백병전에는 칼과 창을 사용했고 젊은자가 우대받고 늙은자가 홀대를 당했다고 한다. 이것은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흉노에 대한 설명이다. 처음 기록으로보면 중국과 흉노과 대적하게 된 것은 만리장성이 축소되었던 때였다. 진시황이 기원전 215년 대규모의 흉노 정벌이 거행되었다. 그결과 오르도스 일대의 흉노가 위로 쫓겨갔다. 흉노전쟁의 개막은 한 나라가 흉노의 힘을 너무 얕본데 있다. 한왕신은 흉노의 힘을 알고 그들의 화의 적인 태도를 취했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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