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 시대 도교와 풍수도참 사상의 관한 리포트입니다. 도움 되셨으면 좋겠네요^^
목차
I. 고려시대의 도교사상
1. 도교의 발생과 일반적 평가
2. 고려시대 도교의 전개
1) 제 1기
2) 제 2기
3) 제 3기
3. 도교 의례의 내용
4. 도관
1) 구요당
2) 복원궁
5. 고려 도교의 쇠퇴와 사상적 변화
II. 고려시대의 풍수도참사상
1. 도선의 풍수도참
2. 훈요십조와 풍수도참설
3. 고려시대의 풍수도참사상
1) 풍수도참 관련 관청의 변화
2) 풍수지리사상의 내용
3) 반풍수론과 풍수지리설의 변화
4. 고려시대 풍수도참사상의 특징
III. 참고문헌
본문내용
I. 고려시대의 도교사상
1. 도교의 발생과 일반적 평가
도교는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서 고대의 민간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신선설(神仙設)과 노장사상(老莊思想)이 결합되고 거기에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역리(易理), 참위(讖緯), 의술(醫術), 점성술(占星術) 등의 이론을 보태고, 그것을 불교의 체계와 조직, 유교의 윤리를 모방하여 뭉뚱그린 하나의 종합적인 철학 및 종교체계이다. 일반적으로 노장(老莊)의 철학을 도가(道家)라 이르고 종교로서의 체계를 도교(道敎)라 구분한다. 도교에서는 노자(老子)를 신격화하여 도덕경(道德經)을 최고의 경전으로 받들며 장자(莊子)의 진인개념에 근거하여 전래의 신선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도교는 일반적으로 비술과 마법과 무속으로 타락하였다고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다. 임어당, 김학주 역, 이교도로, 태양문화사, 1977, 200p.
양계초는 말하기를 “약 100여 년 동안 괴상망측한 설이 다 나와서 인심이 거기에 빠져 들어갔다.” 고 탄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교는 실제로 긍정적인 기여도 컸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술과 과학분야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민중의 역사철학으로, 또한 유연한 처세술로 전개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도교가 한국 사회에 유입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며 고려시대에는 가장 융성했다. 고려는 사상적으로 불교가 중심이 된 사회였지만 도교나 유교가 불교에 의해 배척되지 아니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상사에 있어서 고려시대 도교의 연구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 고려시대 도교의 전개
도교가 신앙인 이상 그것이 유행하는 데는 사회교화적인 성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고려시대에 들어 먼저 도교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는 왕인 예종(睿宗)을 먼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송의 휘종이 파견한 국신사 일행 중 서긍(徐兢)이 고려의 송도에 다녀간 경과와 견문을 그림을 곁들여서 엮어낸 사행보고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기술한 바와 같이 예종은 모든 사람들이 도교의 가르침을 알고 믿도록 하였으며 국교적 위치에 있던 불교의 위치에 도교를 올려놓으려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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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炳德,「高麗時代 宗敎思想과 그 特性」, 『韓國學入門』, 학술원, 1983.
車柱環,「高麗의 道敎思想」, 『韓國의 道敎思想』, 同和出版公社,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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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한국인의 성과 미신, 기린원, 1990.
임어당, 김학주 역, 이교도로, 태양문화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