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일본 근대 정치사
- 최초 등록일
- 2006.10.11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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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근대정치사라는 책을 읽고 요약한 글.
목차
<제1장 도쿠가와 시대의 유산>
<제2장 서양의 도전과 일본의 대응>
<제3장 도쿠가와의 멸망>
<제4장 근대 국가의 건설>
<제5장 메이지 천황과 메이지 헌법>
<제6장 무화수용>
<제7장 산업화:제1단계>
<제8장 자본주의와 국내정치>
<제9장 자주와 제국>
<제10장 군인과 우익>
등..
본문내용
<제1장 도쿠가와 시대의 유산>
정치와 사회
1850년 일본의 지배 계급의 구성원들, 즉 번주와 무사들은 주종 관계에 의해 서로를 구속하고 있었고, 대부부의 경우 농민으로부터 수확물의 일부를 번세로서 징수하였다. 중앙의 권위는 1450년 이전의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강력했다. 번주의 영지는 크기와 조직에서 봉토보다는 공국의 형태에 가까웠다.권력의 행사는 관료주의적이었다. 이와같은 체게는 전국시대에서 비롯됬다. 당시 군사력과 통치기술릏 가진 자들은 자력으로 광대한 영토를 획득하였고, 그 영토 내에서 자신의 권위에 대한 형식적인 승인을 확보하였다. 그 중 최후이자 가장 위대했던 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이에야스는 1600년 서일본의 다이묘들을 제압하여 국내패권을 장악하였고, 1603년 쇼군의 직위에 올랐다. 쇼군은 명목상으로는 천황의 군사 대리인이었지만 수세기 동안 일본의 사실상의 통치자들이 쇼군 직을 보유해왔다. 이에야스는 쇼군 직에 의해 인민과 토지 전체 그리고 조정까지도 포괄하는 통치권을 부여받았다. 천황의 수도인 교토에서는 쇼군의 친족이나 가신 중에서 선발된 통치관이 쇼군 직을 대리하였다.조신들은 쇼군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도록 임명되었고, 쇼군에 대한 특별 충성 서약을 행해야만 했다. 천황 자신은 도쿠가와의 연금 수령자였으며, 사실상 궁전 속의 수인이었다. 반면 에도성 사람들은 이와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최고 권력자인 쇼군이 보유한 봉건 영지의 크기는 일본 전체 토지의 약 15%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최고 가신을 제외한 쇼군의 무사들은 10%이상을 보유하였다. 이론상 쇼군직은 세습적인 동시에 전제적이었다. 대부분의 정책결정은 중앙행정부인 막부에 직을 가진 관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참고 자료
일본근현대 정치사(W.G.비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