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와 조선 후기 군제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6.10.1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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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의 정치
- 비변사와 군제 -
국제통상학과 200103672 황 병 곤
1. 비변사(備邊司)
: 조선 중후기 의정부를 대신하여 국정 전반을 총괄한 기구, 비국, 주사라고도 하였다.
(1) 비변사의 설치
-배경(국내외의 정세)
① 대외적 정황 : 조선 초기부터 문제시된 왜구와 야인들의 출몰에 대비하기 위해 성종 때 지변사 재상을 임명하여 운영을 했다. 지변사 재상은 변방의 문제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②대내적 정황 :조선 건국 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된 군제의 해이로 인해 국방력이 계속 해서 약해지고, 무관직을 경시하면서 군사전문가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나 타나게 되었다.
-삼포왜란
: 비변사의 설치의 실질적인 원인이 되었다. 중종 5년 삼포왜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처음 실 시된 기록이 있다.
목차
1. 비변사(備邊司)
2. 오군영(五軍營)
3. 속오군(束伍軍)
본문내용
1. 비변사(備邊司)
: 조선 중후기 의정부를 대신하여 국정 전반을 총괄한 기구, 비국, 주사라고도 하였다.
(1) 비변사의 설치
-배경(국내외의 정세)
① 대외적 정황 : 조선 초기부터 문제시된 왜구와 야인들의 출몰에 대비하기 위해 성종 때 지변사 재상을 임명하여 운영을 했다. 지변사 재상은 변방의 문제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②대내적 정황 :조선 건국 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된 군제의 해이로 인해 국방력이 계속 해서 약해지고, 무관직을 경시하면서 군사전문가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나 타나게 되었다.
-삼포왜란
: 비변사의 설치의 실질적인 원인이 되었다. 중종 5년 삼포왜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처음 실 시된 기록이 있다.
(2) 비변사체제로의 전환
-임란 전
: 중종 5년에 설치된 후 7년에 별 다른 기록없이 7년에 폐지되었다. 중종 12년에 야인의 중동과 전라도 해도의 왜구 출몰로 복설되었다. 다만 서북양계 대책을 목적으로 하되 변 방의 동요를 염려하여 명칭을 축성사로 하였다. 그러나 명실상부하지 못하다는 대간의 주 장이 제기되어 축성사도체찰사를 폐지하고 순찰사 2원만을 두게 되자, 순찰사의 요구로 비변사로 개칭할 것을 요구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삼공을 도제조로, 순찰사를 제조 로, 종사관을 낭관으로 개편함으로써 비변사의 조직을 갖추었다. 임란 전에는 변방의 일 만을 관리하는 일이 전부였으며 중신들의 입김에 의해 설치와 반복을 계속하는 것을 반복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