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음악기관의 변천사[신라,고려,조선,근대]
- 최초 등록일
- 2006.10.07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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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음악기관 변천사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신라, 고려, 조선, 근대시대의 음악기관 등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다른학생과 인터넷과 차별화하기 위해 내용을 독창적으로 구성하였으며, 의견역시 창의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논문수준의 많은 자료, 독창성과 알찬 내용으로 A+받은 과제입니다.
목차
♠신라의 국립음악기관 음성서
♠고려의 왕립음악기관
※대악서(大樂署)
※관현방
※봉상시(奉常寺)
※아악서(雅樂署)
※전악서(典樂署)
※악학도감(樂學都監)
※관습도감(慣習都監)
♠조선초기의 음악기관
♠근대시대 이후의 음악기관
본문내용
♠신라의 국립음악기관 음성서
신라 음악사를 살피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성서(音聲署)’라는 국가음악기관이다.
설립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신라 24대 진흥왕(眞興王) 5년(555년)에 음성서의 관직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대개 7세기경에 제도화된 듯하다.
왕대
연 대
소 속
명 칭
악 관 직
24대
진흥왕5년
(555년)
예 부
(禮部)
음성서
(音聲署)
장(長)2명
대사(大舍)2명
사(史)4명 ?
31대
신문왕7년
(687년)
예 부
(禮部)
음성서
(音聲署)
경(卿)2명
?
사(史)4명 ?
35대
경덕왕
(742-765)
예 부
(禮部)
대악감
(大樂監)
처음-경
개정-사악(司樂)
처음-주부
개정-대사
사(史)4명 ?
36대
혜공왕
(765-780)
예 부
(禮部)
음성서
(音聲署)
처음-장2명
개정-경2명
대사2명
사(史)4명 ?
신라에서는 일찍이 종묘제도를 두어 조상의 제사도 지냈고, 왕과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회도 벌였으며, 또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하례(賀禮), 그리고 조하(朝賀)․연례(宴禮)․제향(祭享)까지 있었으므로 이때 음악이 필요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때의 음악을 위해 제도화된 음악기관이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음악을 장관(掌管)하던 기관의 명칭과 그 조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의 왕립음악기관
나라의 각종 의식과 여러 가지 연향 등에는 음악이 따랐다. 이러한 음악을 공급하기 위한 기관과 이들을 평상시에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기관이 각각 있었다.
태조 원년 7월에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를 두었고, 태종 5년 3월에는 육조(六曺)의 분직(分職)과 소속(所屬)에 관한 일을 상정(詳定)한 바 있다. 즉, 예조(禮曺)에 소속되어 있는 기관으로서 봉상시(奉常寺)․아악서․전악서․관습도감(慣習都監)의 이름이 보이고, 십학(十學) 중에는 유학(儒學)․의학(醫學)․음양풍수(陰陽風水)등과 함께 악학(樂學)이 있어 악학도감(樂學都監)을 두었다.
이와같이 음악을 맡은 기관이 많았는데, 각각 그 소임(所任)이 어떻게 달랐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대악서(大樂署)
대악서는 고려의 왕립음악기관 중에서 제일 먼저 설립되었는데, 늦어도 10세기말에 설립되었다. 통일신라 때 왕립음악기관이었던 음성서가 신라의 멸망 이전까지 음악활동을 관장했을 것이며, 고려의 건국 때 신라 음성서의 전통을 전승하여 궁중의식에 따른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참고 자료
음악기관 관련 논문, 서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