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중국의 신석기유적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6.10.0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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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신석기문화는 앙소(仰韶)문화인데, 1920년대 하남성 낙양 서쪽 신안현(新安縣) 민지현에서 발견되어 알려졌다. 이를 발견한 스웨덴의 지질학자 엔더슨(Andersson)은 여기서 출토된 채색(彩色)토기를 근거로 하여 중국문명의 서아시아에서 전래되었다는 서방기원설을 주장하였다. 이후 중국인 배문중(裴文中)이 산동성 역성현(歷城縣) 용산진(龍山鎭) 성자애(城子崖) 유적에서 흑도가 중심이 된 용산(龍山)문화를 발견하여, 앙소문화와 용산문화는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황하문명의 대표로 여겨졌다.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신석기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의 제기로부터 시작하여 고고학적인 발굴을 계기로 수차례의 수정이 가해져 현재 중국문명의 다원적 발전과 독자성이 확인되기에 이르렀다.
목차
1. 중국의 신석기에 대해서
2. 신석기문화의 전통과 특징
3. 문화와 유적
(1) 앙소 문화
(2) 하모도
4. 홍산문화(紅山文化)
5. 용산- 용산문화(기원전 2300~1800년)
6. 고고학에서의 관점
본문내용
1. 중국의 신석기에 대해서
중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신석기문화는 앙소(仰韶)문화인데, 1920년대 하남성 낙양 서쪽 신안현(新安縣) 민지현에서 발견되어 알려졌다. 이를 발견한 스웨덴의 지질학자 엔더슨(Andersson)은 여기서 출토된 채색(彩色)토기를 근거로 하여 중국문명의 서아시아에서 전래되었다는 서방기원설을 주장하였다. 이후 중국인 배문중(裴文中)이 산동성 역성현(歷城縣) 용산진(龍山鎭) 성자애(城子崖) 유적에서 흑도가 중심이 된 용산(龍山)문화를 발견하여, 앙소문화와 용산문화는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황하문명의 대표로 여겨졌다.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신석기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의 제기로부터 시작하여 고고학적인 발굴을 계기로 수차례의 수정이 가해져 현재 중국문명의 다원적 발전과 독자성이 확인되기에 이르렀다.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이란 1930년대 부사년(傅斯年)이 주장하였던 견해로서, 앙소문화와 용산문화를 황하의 동·서에서 동시에 병존·대립하던 문화유형으로 이해한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화하(華夏)족은 서쪽 섬서성을 기반으로 하여 앙소문화를 바탕으로 주를 건설하였고, 동이(東夷)족은 동쪽 산동성을 기반으로 하여 용산문화를 바탕으로 은(상)을 건설하였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앙소문화가 B.C. 2000년경의 것이고 용산문화가 B.C. 1500년경의 것이라는 연대를 근거로 하여 제기된 것이었다. 또한 상과 주의 민족의 기원을 달리 봄으로써 토기유형의 차이와 문화의 주인공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당시 대내외에 커다란 반향과 긍정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견해는 이후의 고고학 연구 성과에 의해 두가지 점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되었다. 첫째는 앙소문화는 이후 B.C. 5000-3000년 경의 문화라는 것이 확인되지만, 용산문화는 아무리 해도 B.C. 25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두 문화가 대립·병존하였다는 견해는 무리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