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본존불상의 이미지를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06.10.0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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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문화유산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작성했던 레포트 입니다.
경주에 있는 석굴암 본존불상에 대해서 작성했습니다.
목차
1.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1) 불상
2) 불상의 묘사
3) 불상의 특징
4) 위엄 있는 불상과 관능적인 불상
2. 석굴암 본존불상
1) 석굴암
2) 석굴암 본존불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1) 불상
삼국시대부터 숭상되던 불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통일신라는 사원건축이나 불상 조성에 국가가 앞장섰던 불교문화의 전성기였다. 통일신라의 불상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토착적 불교문화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교류가 활발하던 당과 서역, 인도의 외래 양식을 수용함으로써 독특한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보면, 먼저 입상에는 여원인(與願印)과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을 보여주는 불상이 많고 약이 들어 있는 함을 든 경우도 많다.
통일 초기에는 삼국의 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나다가 성덕왕(702∼737) 이후 정치·군사적 안정을 이루면서 성당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서역·인도·페르시아 문화까지 수용하여 국제적인 문화를 건설하게 된다. 철학적 체계를 갖춘 불교에서 사회적 합의점을 추구하였던 신라는 경주를 비롯하여 각지에 많은 사찰을 건설하였으며 불상과 탑을 남기게 된다.
불상 중에서도 아미타불과 미륵불이 많이 조성되었다. 불상들의 조각경향은 사실주의 경향이 현저하며 화려한 장신구를 갖춘 볼록한 가슴의 풍만한 체구·잘록한 허리·삼곡 자세로 비튼 모습의 감각적인 불상에서 당당한 체구·품격 있는 상호 등을 갖춘 이상형의 불상으로, 이상형의 불상에서 생동감과 품격이 현저히 떨어져 인간적인 모습을 한 불상으로 변한다. 꽃이 활짝 핀 다음에는 지듯이, 혜공왕(765∼780) 이후 절대왕권이 약해지고 구 귀족들의 세력이 강력해지면서 중앙 정부의 지배질서는 혼란을 겪고, 지방 세력의 지원 아래 새로운 사상인 선종이 널리 퍼지게 된다.
참고 자료
http://aped.snu.ac.kr/cyberedu/cyberedu2/kor/kor8-032.html
http://www.culturekr.com/budda/image/l0_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