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09.26
- 최종 저작일
- 2006.01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 10,000원
- 100 page
- PDF 파일
- 상세 보기
소개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책의 첫 장, ‘사랑은 기술인가?’ 부분을 읽기 시작했을 때 받은 나의 느낌은 ‘난해하다’였다. 한번도 사랑을 기술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너무 뜬금없는 소리이기도 했고, 뜬구름 잡는 소리이기도 했다. 다 읽고 나서는 그의 주장의 기본적 견해에는 동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 즉 그가 세분화하고 정의한 다양한 사랑의 형태들과 그 의의 등에 관해서는 전부 동의한다고 하기 힘들다.
먼저,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랑의 견해와 에리히 프롬이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한 그의 주장과 비교해 보았다. 전체적으로 그가 지적한 현대 사회에서 사랑의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 즉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생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생각, ‘사랑하게 되는 것과 하고 있는 상태의 혼동’등의 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변화하였고 그로 인해 한 시대를 지배하는 많은 사고나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였으며, 여기서 사랑의 문제가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사랑은 받는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했고,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한 순간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혼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 예로 볼 수 있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가벼운 연애나 이혼율의 증가 등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주는 것’, ‘의지 행위’, ‘개인의 결단과 행동’ 등으로 그가 정의한 사랑의 능동성과 ‘자기애’와 관련된 그의 주장에도 나는 동의한다. 사랑에 관한 나의 견해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기애’와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사랑은 자신의 의지로 주는 것이며,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 개인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능동적 행위이며, 사랑을 받는 행위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랑은 준다고 해서 모두가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거절당하기도 하며, 또는 수용이 유보되기도 한다. 이것은 사랑을 받는다는 행위조차도 전적으로 능동적으로 행해진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나의 이러한 견해와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기본적으로 바탕이 유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여러 사랑들과 그 특성에 대한 그의 주장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도 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