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김해 양동리 고분군
- 최초 등록일
- 2006.07.15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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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해시 양동리 고분군에 관한 간단한 고고학적 조사 소개글.
목차
1. 개요
2. 유구와 유물
3. 의의
본문내용
양동리 고분군은 김해시의 주촌면 양동리 가곡마을 옆 야산에 위치해 있다. 유구는 야산의 정상부로부터 남서쪽 경사면 및 그 끝부분에 형성되어 있는데 유적의 전체 규모는 약 3만평 정도이다. 이 유적에 대한 조사는 동의대학교에서 담당했는데 1990년부터 1996년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발굴된 유구는 토광목관묘, 토광목곽묘, 수혈식석곽묘, 옹관묘, 유사적석곽묘 등으로 총 526기이며 유물은 토기 1925점, 철기 2889점, 청동기 45점, 장신구류 69점, 기타 24점 등 총 4950여점이 발굴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지금까지의 자료로 볼 때, 상한은 B. C. 2C 말, 하한은 A. D. 5C로 추정된다.
2. 유구와 유물
유구에 있어서는, 6종류나 되는 다양한 고분이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가야의 고분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가야 고분의 변천 과정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가야 고분은 시기별로 크게 구분해 보면 토광목관묘 → 토광목곽묘 → 수혈식석실묘의 단계로 변화․발전 되어갔다. 토광목관묘를 통해서 초기가야가 B. C 1C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제 55호 토광목관묘를 통해서는 묘의 주인의 신분이 천군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되어 가야의 정치적 성장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또한, 기존까지 의문으로 남았던 대형 토광목곽묘의 출현이 A. D 2C였음을 확인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묘실 내부를 불태우는 특수 장의가 확인되어 북방지역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출토된 각종유물은 시기별 가야 문화의 실상과 변천상을 한눈에 보여줄 뿐 아니라 기존 이 분야의 연구에 있어서 부족했던 많은 부분을 보충해 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토기․철기․청동기․장신구 등에 있어서 확보된 새로운 자료들은 이들에 대한 잘못된 연대관이나 인식 등을 수정해야 할 것임은 물론 이들을 통해 볼 때 가야 사회는 국제성을 띤 세련된 문화를 향수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토기에서는 와질토기에서 경질토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확인되었으며, 철기에서는 다양한 무기․농기구 등이 확인되었는데 정복 활동이 활발히 전개 되었던 당시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연대, 계보 등의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