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어]중세 프랑스어
- 최초 등록일
- 2006.06.20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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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 프랑스어에 대한 배경과 그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스트라스부르서약의 시작으로 프랑스어는 발달하게 된 배경.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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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987년 위그 카페는 프랑스 왕으로 선출되고 왕위에 올랐다. 이 왕은 자기 자신을 라틴어가 아닌 로마어로만 사용했던 최초의 군주였다. (로마어->프랑스어)
위그 카페는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했고, 그 영역을 확장했다.(영토 확장)
다른 도시로 수도를 옮겨 다녔던 그 이전에 왕들과는 달리 위그 카페는 파리에 수도를 고정했다.
그러나 1119년이 되어서야 위그 카페의 후손인 루이 6세가 Calixte II에 보내는 편지에서 스스로를 프랑크의 왕이 아니라 로마교의 전통적인 자식인 프랑스의 왕이라고 스스로를 교황이라고 했다. 이것은 프랑스라는 단어가 언급이 된 최초의 텍스트였다. 여기에서 franÇais와 francien이 나온다. 사실상 그 당시에 존재했던 것은 franÇois이다.
francien어는 문헌학자인 Gaston Pares에 의해 피카르디어, 노르망디어, 부르고뉴어 같은 지방어들과 구분하여 13세기의 일 드 프랑스의 프랑스어를 가르키기 위해서 1889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피,노,부, 이 프랑스어를 francien라고 부르기도 함)
francien, franÇais 또는 franÇois든 어쨌건 일 드 프랑스어의 언어는 아직 멀리 퍼지지 않았고, 아주 작은 지방에서만 썼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사제들이 쓰는 라틴어와 구분되고 다른 사람들이 쓰는 지방언어(사투리)와 구분되는, 공통적으로 쓰인 제대로 모양이 잡힌 프랑스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안정적으로 정착된 수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가장 막강한 군주의 지방어 특권을 부여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고정된 수도, 막강한 정치세력 -> 서민들은 말을 배울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들은(중산층) 무역을 하려면 francien어를 써야 했다.
루이 9세(십자군원정)가 왕위에 올랐을 때 언어의 통일은 부분적으로 이루어 졌고, francien어의 주도권이 이루어졌다.
많은 군사력을 사용한 전쟁을 겪은 후에 프랑스 왕이 다른 많은 북부언어가 대체하면서 언어를 통일했다.
남부는 파리와 멀기 때문에 덜 통일 되었지만 주요도시에도 프랑스어를 쓰기 시작했다. 루이 9세 통치 말년에 이르러서 유럽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확고한 특권을 확실하게 해 주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프랑스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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