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기록문화의 진수 : 조선왕조실록
- 최초 등록일
- 2006.06.18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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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Ⅰ.序
역사란 인간이 거쳐온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이나 그 사실에 대한 기록의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 과거의 조상들의 삶은 하나의 지표가 된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의 성공의 노하우를 익히고 실패의 아픔을 느끼며 그들의 삶을 우리의 삶에 투하시키고자 한다. 역사가 그리도 중요한 것이라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다행히 우리의 선조들은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데에 가장 필요한 기록에 대해서 철저하고 엄격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글에서는 조선왕조가 남긴 세계 최고의 기록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문화유산인 실록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그 역사적 가치와 우수성에 대해서 서술하기로 한다.
목차
Ⅰ.序
Ⅱ.조선왕조 실록
1. 실록이란
2. 조선왕조 실록
Ⅲ. 조선왕조 실록 편찬
1. 춘추관
2. 사관
Ⅳ. 조선왕조 실록의 보관과 수난사
1.실록보관의 의의
2. 실록보관의 역사
3. 사고의 운영과 실록 보관
4. 실록의 수난사
Ⅴ. 結
본문내용
1. 춘추관
(1) 춘추관의 역사
많은 사람들이 춘추관하면 조선시대를 떠올리는데 사실 고려시대부터 존속하였다. 단지 역사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 조선시대일 뿐이다. 그리고 춘추관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종 때 부터이다. 그전 고려시대는 문한서 또는 예문춘추관으로 불리었다.
(2) 춘추관의 업무
이것은 조선의 춘추관을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아무래도 역사적 활약이 잘 나타난 시점이 조선이기 때문이다. 춘추관의 사관은 8명으로 이들은 관품은 낮으나(정6품에서 정9품 사이) 왕의 행차, 신하와의 면담, 조회의 참석 등 왕이 있는 곳에 함께 머물렀다. 이들은 사초를 작성하고 민심을 기록하였으며 왕의 행동을 일거수 일투족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이 작성되었다.
(3) 춘추관의 직급
춘추관은 다른 관청의 직원들이 업무를 겸직하였으므로 따로 관리들이 없었다. 우선 대표인 영사는 영의정이, 그리고 감사는 좌,우의정이 맡았으며 그 외의 관직도 역시 다른 관청의 관리들이 함께 맡았다. 지사(정2품)와 동지사(종2품)가 각각 2명씩, 또 수찬관(정3품)과 편수관(정3품~종4품), 기주관(정,종5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많이 보는 기사관(정6품~정9품)이 있는데 보통 조회시에 왕의 맞은편에서 붓으로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다.
(4)춘추관의 왕조실록 편찬
춘추관에서는 선왕의 실록을 하지는 않았다. 선왕이 승하하면 다음 왕은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실록청을 설치하고 그 곳을 통해 실록을 작성한다. 하지만 실록 작성을 위한 기록의 대부분이 춘추관 사관들이 기록해 놓은 사초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춘추관하면 실록 편찬 이렇게 생각한다.
(5) 실록의 작성
4번 답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당시 실록청의 파견 인사는 왕이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낮은 직책의 일을 하더라도 관품은 높은 그런 사람들이 파견된다. 그리고 춘추관의 사관들은 그 일과는 별도로 자신의 업무를 계속한다. 즉, 실록청의 사관과 춘추관의 사관들은 서로 다른 일을 맡아서 직무를 계속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