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공자의 이름으로 죽은 여인들
- 최초 등록일
- 2006.06.1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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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양 수업시간에 독서감상문으로 제출한 것입니다.
책의 내용위주가 아닌 독창적인 생각위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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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자의 이름으로 죽은 여인들이란 제목은 우리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 중 유교에 의한 것이 많듯이 여성의 권리적인 측면에서도 유교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대한민국의 부부는 민법상 서로 성적인 순결을 지킬 정조의 의무가 있다. 일부일처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남편의 경우나 아내의 경우나 동일하게 자기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정조의무 위반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재판상 이혼의 첫 번째 사유가 된다. 정조의무는 유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며 정조의무의 중요성은 옛날 중국에서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중국의 여성들 사이에서 배우자나 약혼자를 잃은 후 평생 수절하거나 그를 따라 자결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이었으며 중국 역사를 통해 종종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관습이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수적으로 갑자기 증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란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한 이후로 특정지을 수 있다.그는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가 죽은 형의 아내를 취하고 남편이 죽은 후 계모가 양아들과 결혼하는 풍습을 지극히 혐오했다. 그는 ‘여계’를 공표해 중국의 전통적인 윤리 가치를 회복하는데 앞장섰다. 주원장이 죽은 후 그를 섬겼던 궁인 38명이 자결했으며 재임기간동안 정절을 지킨 여인들에 대해 포상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중국 사회는 ‘여성의 정절’ 문제가 향촌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고금도서집성’이란 책에는 원나라 때 정절 문제로 자살 또는 타살된 여성의 수가 3백83명이었던 반면 명나라 때는 8천6백88명에 이른다고 나와 있다. 명 조정은 수절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물인 패방(牌坊) 건립을 지원했고 열녀를 낸 집안은 이를 가문의 영광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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