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위진남북조시대
- 최초 등록일
- 2006.06.13
- 최종 저작일
- 2006.06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위진남북조 시대는 한족과 이민족이라는 두개의 축에 의해서 중국이 통치되었던 시대를 의미한다. 흔히들 역사에서는 호한체제라는 용어가 이 시대부터 적용이 된다. 즉 오랑캐와 한족이라는 두개의 체제가 성립되어 각각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문화는 혼합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져 발전되어서 이후 중국 문화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문화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위진남북조 시대는 한족과 이민족이라는 두개의 축에 의해서 중국이 통치되었던 시대를 의미한다. 흔히들 역사에서는 호한체제라는 용어가 이 시대부터 적용이 된다. 즉 오랑캐와 한족이라는 두개의 체제가 성립되어 각각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문화는 혼합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져 발전되어서 이후 중국 문화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문화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절이나 탑 등 도처에 산재해 있는 불교적 건축물들은 마치 중국의 산천이 처음 생성될 때 그때부터 함께 있어왔던 것처럼 중국적 풍광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서 불교가 중국문화와는 대조적일이 만큼 이질적인 이국 종교였다는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불교는 신유학의 서단을 열었던 당대의 거유 한유가 비판했던 것처럼, 인도에서 발생한 이적의 종교로서 중국적 관습과는 대립되는 요소가 많았다. 승려의 독신주의와 고행으로 육체를 괴롭히는 수도생활은 대를 이어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야 하는 중국적 가족제도, 조상으로부터 받은 신체를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적 전통 사고방식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었다.
공자는 일찍이 죽음에 대해서 묻는 제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살아가는 것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은 후의 것을 알겠는가?」
공자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구원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어떠한 종교도 무지한 대중을 현혹시키는 비합리적인 미신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교가 위진남북조 시대에 중국인들을 열광시키고 중국인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시기 화북에 왕조를 세웠던 유목민족들에게 중국적 편견이 없었던 점, 또한 거듭되는 전란과 정치적 분열 속에서 이미 제국의 학문으로 뿌리를 내린 유교가 힘을 잃고 사상적 공백을 보이고 있었던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