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라 삼국통일의 바탕과 의의 그리고 그 한계성
- 최초 등록일
- 2006.06.11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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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 삼국통일의 바탕과 의의 그리고 그 한계성을 2페이지 분량으로 요약 간단히 정리해본 글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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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삼국통일 전 7세기 중반 삼국은 커다란 정치적 혼란 상태를 겪는다. 642년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의 정변으로 인한 독재정권이 수립되고 백제에서는 641년과 657년 의자왕에 의한 대대적인 왕권강화정책이 시행되는데 왕족 41명에게 좌평직을 수여하는 등 파격적인 전제체제 구축으로 인해 귀족세력의 많은 반발을 사게 된다. 이는 곧 나당연합군의 침공에서 탁상공론으로 인해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나 좌평 임자란 자가 신라 간첩에게 포섭되는 등 극심한 정치적 난맥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고구려 또한 연개소문의 생존 시에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되지 않고 오히려 당의 대대적인 침공을 막아 내는 등 어느 정도 단결된 모습을 보이나 연개소문의 죽음과 함께 내재되어 있던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결국 후계구도에서 밀린 연개소문의 장자 남생이 당으로 자신의 세력과 함께 투항하여 당의 고구려 침략시에 앞장서는 매국행위를 행하게 됨으로써 결국 스스로의 내분으로 자멸하게 된다. 반면 신라는 647년 발생한 비담의 난을 승리로 극복한 신흥 귀족 세력이 아직도 신라 정계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잔존 구 귀족세력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삼국 중 유일하게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 654년 진덕여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때 왕위계승 다툼에서 구 귀족세력의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상대등 알천의 양보를 받아내 김춘추가 탈 없이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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