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삼국유사를 통해서 본 신라의 미타신앙
- 최초 등록일
- 2006.06.04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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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에 나타난 광덕과 엄장, 노힐부득 달달박이 등을 통해서 본 신라의 미타신앙을 조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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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라의 미타신앙을 고찰하기 위한 주된 자료로서는 삼국유사가 있다. 이 책은 고려시대의 승려 一然(일연;1206~1289)에 의해 찬술된 것으로서, 삼국시대 사회전반의 事象(사상), 즉 사회상·생활양식·신앙 등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승려였기 때문인지 그 내용의 대부분이 불교와 관계되는 것으로서 내용도 풍부하다.
그러나 이들 기사는 고려시대에 채집된 것들이므로 신라시대의 자료로서 취급할 경우에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몇 개의 미타신앙 설화를 읽고 신라시대 불교의 미타신앙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신라 사회에서 미타신앙이 표면화된 시기는 7세기 중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웃 나라인 수・당에 깊이 뿌리내리던 미타신앙이 문물 교류를 통해 신라 미타신앙의 유포에 큰 몫을 했으리라 추산된다. 사행(使行)과 구법승(求法僧)의 내왕이 빈번했던 신라로서는 주변 강대국의 추세에 무심했을 리가 없다. 그들의 강요가 없더라도 외교력이나 군사력을 빌어 삼한의 통일을 꿈꾸었던 신라였던 만큼, 모방과 추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게다가 왕실 불교 및 귀족 불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하층 대중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자성과 비판은 미타신앙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내재적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내외적 여건이 미타신앙의 확산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7세기 말엽에는 미타신앙이 문화 전반에 침투하기 시작했다고 보인다. 이 글에서는 7세기 중엽부터 8세기까지의 설화 세편을 통해 미타신앙이 사회에 어떻게 뿌리내려가는 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미타신앙을 수입했던 초기에 수도자 본연의 자세로 구도에 전념해 온 양심적 승려들은 종단의 세력가들이 왕실과 귀족의 두호와 존경 속에서 자리차지에만 몰두할 뿐 불교의 건설적 발전에 오히려 역행하고 있을 때에 경주 변두리나 지방에서 미타신앙의 보급과 정착에 모범을 보였는데 문무왕 때 광덕과 엄장, 성덕왕 때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그들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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