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
목차
없음
본문내용
2000년에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영화 ‘빌리 엘리엇’은 80년대 북부 영국의 탄광 마을에 사는 한 소년이 발레리노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 인간해방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면서 감동을 이끌어낸 영화였다. 탄광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 그 속에서 춤추는 소년 빌리와 엘리어트 家. 작은 탄광마을에서 타자 빌리와 마이클에게 인간해방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또한 마을을 중심으로 한 정상적인 근대인의 범주는, 우리가 교육받고 믿어온바와 같이 절대적이며 완전한 인간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빌리는 탄광의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난다. 빌리 역시 처음에는 그를 둘러싼 ‘거대한 침묵’의 분위기속에서 ‘길들여진’ 보편적인 사조, 즉 그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된 노동과, 남성으로서의 삶(권투), 그리고 이성애자로서의 운명(마이클)속에서 ‘길러진다.’ 그러나 빌리는 누구보다도 용감했다. 비록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선 위에 있지만, 춤을 통해 새로운 것의 창안과 창조 지배적인 것에 대해 외부적인 새로운 힘의 생산을 이룩했기에.
하지만 이 경우 피해갈수 없는 질문이 있다. 이처럼 목적이 정해진 직선 위를 벗어나는 것에서 외부를 통한 발전으로서 인간해방을 정의한다면, 그것의 가치평가는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능력의 확장’이라는 기준이다. 능력에 대한 근대적 개념은, 대상세계에 대한 통제 가능성에 의해 정의되었다. 그러나 능력이 크다는 것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을 담아내고 수용하며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론의 능력이 크다는 것 역시 그것이 담아낼 수 있는 다른 이론들의 이질성의 폭과 강도가 크다는 것을 통해 정의된다. 어떤 이론이 진보된 것인가 아닌가는 그것이 이전에 있던 자신이 반박하고 넘어서야 했던 이론이 설명하던 것을 자기 안에서 담아내며 새로운 이론적 일관성 아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체제의 능력 역시 마찬가지 이다. 독재적인 체제는 강력한 통제력을 갖고 행사한다는 점에서 쉽사리 강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이질성과 반대, 차이조차 소화하고 흡수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코 강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매우 협소한 범위의 사상과 행동, 삶의 방식만을 허용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하고 적은 능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참고 자료
Deleuze. G, 권영숙 외 역, 『들뢰즈의 푸코』, 새길(1995)
Elias. N, 박여성 역, 『궁정사회』, 한길사(2003)
Elias. N, 박미애 역, 『문명화 과정Ⅰ』, 한길사(2003)
Foucault. M,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나남출판(2003)
Foucault. M, 이규현 역,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2003)
Foucault. M, 이규현 역, 『성의 역사1; 앎의 의지』, 나남출판(1990년)
Foucault. M, 문경자 외 역, 『성의 역사2; 쾌락의 활용』, 나남출판(2004)
Foucault. M, 이혜숙 외 역, 『성의 역사3; 자기 배려』, 나남출판(2004)
Foucault. M, 이정우 역,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2004)
이진경,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소명출판(2002)
이진경, 『철학의 외부』, 그린비(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