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오쿠보 도시미치
- 최초 등록일
- 2006.05.28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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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쿠보 도시미치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그가 태어난 해와 막부말기의 모습,
그리고 메이지 유신후 그가 했던 과업들이
총 5페이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목차
1.그를 이야기하다
2.오쿠보 도시미치
3.막부말의 개혁가
4.판적봉환, 폐번치현, 이와쿠라 사절단
5.정한론
6.오쿠보 정권
7.페이지를 접으며
8.참고문헌
본문내용
그를 이야기하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유신 삼걸이라는 명칭으로서 사이고 다카모리, 기도 다카요시와 함께 거론되는 일본의 거장이다. ‘지혜의 오쿠보’, ‘정치가 오쿠보’라 거론되는 별칭처럼 그는 근대 일본의 기틀을 다진 중추적인 인물이다. 오쿠보는 보통 사이고 다카모리와 비교되는, 혹은 반대되는 위치의 인물로서 많이 보게 되는데, 이는 사이고가 마지막까지 무사들과 함께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반면에 오쿠보는 철저한 정치가의 면모로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함께한 동지들에게마저도 차갑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둘을 확실히 구분지어 보게 만든 계기는 정한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아래쪽에서 설명하기로 하겠다. 아무튼 이러한 모습에서, 일본인들은 실질적으로 일본 관료의 기틀을 마련한 오쿠보보다는 사이고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그들의 동상이 세워진 시기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사이고의 동상이 사후 10년뒤에 세워진 데 반해 오쿠보의 동상은 9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사이고의 동상보다도 작게 사쓰마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일본식의 사무라이적 모습, 이를 숭상하는 관습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바이다.
그럼에도 지금 오쿠보를 이야기 하려는 건 그, 혹은 신정부에서 말하던 슬로건인 ‘외국에 무시당하지 않는 일본’을 만든다는 목적이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비슷한 시기 동양 어디에서나 생각되던 바일 테고, 그리고 이러한 것이 타국들에 비해 유혈 없이 빠르게 이루어진 일본에 대해, 그것을 이룩하게 한 오쿠보에 대해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이미 글을 적은 이상 오쿠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오쿠보 도시미치 [大久保利通 1830.8.10~1878.5.14]
오쿠보 도시미치는 ‘덴포(天保) 개혁’으로 잘 알려진 덴포 원년(1830년)에 사쓰마(현재의 가고시마)에서 태어나 시모카지야(下加治屋)에서 자랐다. 그는 하급무사였던 도시오(利世)의 1남4녀 중 장남이자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쓰마번 성 밑에 거주하는 비교적 하층의 가신(家臣)으로 오코쇼쿠미(御小姓組)의 계층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낮은 신분은 아니었다. 또한 오쿠보의 외조부인 미나요시는 의사였는데, 당대 일류의 네덜란드 학자로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해외사정에 밝았다. 오쿠보의 선구적인 인식은 이러한 외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다.
참고 자료
․일본을 이끌어 온 12인물 / 사카이야 다이치 지음 / 양억관옮김 / (주)자유포럼 / 1997
․일본역사 탐구 / 구태훈 지음 / 태학관 / 2002
․새로 쓴 일본사 / 아사오 나오히로 외 엮음 / 이계황, 서각수, 연민수, 임성모 옮김
/ 창작과비평사 / 2003
․일본을 완성한 지도자들 / 임용순 지음 / 나무와숲 /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