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갑오농민혁명의 제문제 - 갑오농민혁명의 명명문제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6.05.24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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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2. 민란과 동학과의 관계
1) 민란(1893년까지)과 고부민란과의 비교
2) 19세기 동학의 전개양상
3) 민란과 동학의 관계
3. 혁명과 전쟁성의 여부
1) 혁명과 전쟁의 개념
2) ‘전쟁’ 이 아닌 ‘혁명’ 인 이유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갑오농민혁명은 19세기말 조선의 봉건적 지배체제의 모순 심화와 서구열강의 침탈에 대항한 민족운동이었다. 이 1894년의 갑오농민혁명은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에 형성된 체제와 사회의 붕괴를 촉진시킴으로써 근대적인 정치, 경제, 사회체제를 성립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민중의 의식을 일깨우고 성숙시켜 일제 침략 하에서도 민족자립을 위한 투쟁을 할 수 있게 한 힘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중요성에 의해 그동안 갑오농민혁명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이 연구들의 선행조건인 명명문제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결국 이처럼 통일 없는 명칭으로 인해 갑오농민혁명의 정확한 이해와 해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떤 서적에는 "갑오농민혁명"으로 사용되고 또는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혁명"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역사를 보는 현대사의 시각이 너무 빈번하게 바뀌고 또한 권력구조가 바뀔 때 마다 그 정의를 달리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 명명문제를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때와 구미에 맞는 식의 역사 해석과 명명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명칭이 사용되어지기를 염원하면서 갑오농민혁명의 명명문제에 대해서 고찰해보자.
Ⅱ. 본론
2. 민란과 동학과의 관계
1) 민란(1893년까지)과 고부민란과의 비교
19세기에서는 한국역사에 있어서 다른 여느 때보다 많은 민란이 발생하였다. 이렇듯 많은 민란이 유독 이 시기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19세기 조선의 정치, 사회, 경제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지영의「동학사」와 황현의「동학난」에서는 19세기 조선의 부패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 자료
김양식.『근대 한국의 사회변동과 농민전쟁』. 신서원. 1991
신복용.『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평민사. 1991
구양근.『갑오농민전쟁원인론』. 아세아문화사. 1994
한우근.『동학난 기인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4
동학농민전쟁 1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편.『동학농민전쟁연구자료집』. 여강. 1991
길야성외.『갑신 갑오기의 근대변혁과 민족운동』. 청아. 1988
오지영.『동학사』. 대광문화사. 1994
황현 저, 이민수 역.『동학난』. 을유문화사. 1985
유명환.『갑오농민전쟁의 주체세력과 폐정개혁』.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장영민.『동학농민운동연구』. 한국정신운동문화원.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