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유형원의 반계수록
- 최초 등록일
- 2006.05.21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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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관해서 적어봤어요
목차
1. 실학자 유형원이 지닌 인간의 고통에 대한 관심
2. 반계수록 전제편의 내용
본문내용
1. 실학자 유형원이 지닌 인간의 고통에 대한 관심
주지하다시피, 유형원은 17세기 조선의 실학자로서 일생을 학문연구에 바친 사람이다. 유형원이 살았던 17세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 난으로 국력이 피폐하고 토지제도와 군역제도 세금징수 등 국가 세수의 근본이 되는 부분들이 혼란에 빠진 시기였다. 일각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씻고 농촌을 부흥시키려는 의욕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던 때이기도 하였고, 나아가서는 제도 전반에 걸친 개혁이 절실히 요청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유형원은 가족들의 강권을 이기지 못하여 초시에 응시, 입격한 것을 제외하고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1665년 66년 연이어 학행으로 천거되었을 때에도 이를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비록 권력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였지만 이와 같은 시대적 요청을 절감하였고, 그것에 대응하는 지식인의 사명을 깨달았던 그는 중앙정계가 당쟁의 와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시기에 농민들의 곁에 살면서 농촌부흥의 방향과 제도개편의 방법론을 연구하고, 또 일부를 실천에 옮기기도 하였다.
그는 실제로 여생을 농민과 전라도 부안군 우반동에서 보내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유형원이 농민들의 삶을 구휼하기 위하여 노력한 흔적을 보면, 그는 우반동에서 농민을 지도하는 한편, 구휼을 위하여 양곡을 비치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큰 배 4, 5척과 마필 등을 비치하여 구급에도 대비하게 하였고, 이웃은 물론 노복에 이르기까지 극진히 사랑하였다고 전해진다.
20 여년간을 이렇게 농민과 함께 하면서 이룬 그의 연구작업은 대단히 광범위한 것이어서 정치, 경제, 군사, 교육, 사회문제는 물론, 역사, 지리, 언어 등 각 분야에 걸쳐 많은 저술을 하였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전해지지 않고, 단지 반계수록만이 전하여져서 그의 사상을 재조명 할 수 있게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