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탈 동독과 탈북한의 의미와 그 차이
- 최초 등록일
- 2006.05.2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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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탈북자 를 중심으로 탈 동독과 비고하면서
서술했음다
목차
서론
본론
탈북자, 10년의 역사
1) 탈북, 역사적 과정
탈북사태 : 역사적 사건, 통일의 열쇠
맺음말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동남아에서 보호받고 체류해오던 탈북자 450명이 수일 내에 한국에 들어올 전망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 수개월 전에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4000 km 중국 본토를 종단해 메콩강을 건너 동남아 각국으로 탈출했던 북한주민들이다. 이런 여정 속에서 탈북자들은 사선을 두 번이나 넘는다. 한번은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며 사선을 넘는 것이고 다른 한번은 중국 땅을 떠날 때 죽음의 고통을 넘어야 한다. 더욱이 중국 종단 4,000km는 편안한 여행이 아니다. 여권이나 공민증이 없이는 기차로 마음대로 탈 수 없는 상태에서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야밤에 한족의 온갖 멸시 속에서 감내해야할 모진 인생의 험로이다. 꿈에 그리던 남한에 대한 희망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낼 수 있는 험로다.
이런 탈북러시는 15년 전 유럽을 시끄럽게 했던 동독인의 탈출러시를 기억나게 한다. 1989년 여름 동독인의 엑서더스가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해 8월 8일 131명의 동독인들이 동베를린 주재 서독대표부에 진입한 것을 시작으로 체코, 폴란드 주재 서독대사관에는 연일 동독인들의 잠입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고 외교공관의 뜰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임시천막이 설치되었다. 동독탈출은 헝가리정부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절정에 달했다. 동독정부의 각종 협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의 오스트리아 국경개방 요구를 수용한 헝가리 정부의 결단으로 개방 한 달 만에 무려 2만 4천 여 명의 동독인들이 헝가리를 통해 오스트리아로 탈출하게 되었다. 이들은 서독정부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서독에 안착했다.
동일한 탈출이지만 동독탈출자와 북한탈출자(탈북자)의 모습은 이렇듯 천차만별이다. 전자가 국경을 넘는 순간 막강한 서독정부의 힘을 느끼며 안심했던 반면 후자는 또 다른 사선을 향해 고난의 행군을 지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의 힘은 왜소하기 짝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자였던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국군포로나 그 가족이 탈출해도 한국정부의 무관심한 태도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