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병산서원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6.05.19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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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병산서원의 답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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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하회의 답사적 가치는 어떤 면에서는 히회마을 보다도 꽃뫼 뒤편 병산서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병산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건재한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그런 인문적 역사적 의의 말고 미술사적으로 말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한국건축사의 백미이다.”
이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씨가 병산서원을 두고 한 말이다. 빼어난 자연경관이 병풍을 둘러친 듯 하다 하여 ‘병산’이라 불리는 자연환경에 위치한 이 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류성룡(柳成龍)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柳袗)을 배향한 서원이다. 사적 1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춘추향사제가 이루어지고 있다.<춘추향사제는 병산서원의 두 제향(류성룡선생, 류진선생)을 받드는 제사로 봄, 가을 두 번 치러지는 병산서원의 가장 큰 행사입니다.-향사일 : 3월초정일(음력), 9월초정일(음력)>
전신은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유씨의 사학(私學)이었는데, 1572년(선조 5)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13년(광해군 5) 정경세(鄭經世)가 중심이 되어 지방 유림이 유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위폐를 모셨다. 1629년 유진(柳袗)을 추가 배향하였고, 1863년(철종 14)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사원으로 승격되었다.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앞서 말한 유홍준씨의 말대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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