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이상화, 민족적 저항정신의 시세계
- 최초 등록일
- 2006.05.16
- 최종 저작일
- 2005.12
- 1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이상화의 저항정신의 시 세계를 검토한 레포트 입니다.
여러자료를 참고하여 열심히 작성한 자료이므로 이상화에 대해 공부하시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Ⅱ-1. 이상화의 생애
Ⅱ-2. 이상화의 작품경향 및 작품분석
(1) 감상적인 퇴폐성의 낭만주의 시
(2) 민족 및 민중적인 성향의 저항시
(3) 국토찬미와 비애어린 애국시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이상화는 치열한 저항정신과 대결의지로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맞섰던 대표적인 시인이다. 주요 시작(時作)활동 기간은 1922년부터 1928년까지 비록 7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의 낭만주의 사조의 흐름과 함께 그의 시 전반에 걸쳐 정신적 기조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의식은 상화의 시세계를 설명하는 것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 본고에서는 상화의 민족적 저항정신이라는 기치 하에, 작품경향을 크게 세 묶음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작품을 통해 그의 시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Ⅱ-1. 이상화의 생애
이상화는 1901년 음력 4월 5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명망 있는 가문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7세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백부인 이일우에 의해 훈도되었다. 이러한 유년 시절의 아버지 상실로 인한 모성 편향성은 이후 그의 詩세계에 있어「나의 침실로」,「이별을 하느니」등 낭만적 성향의 시로 형상화된다. 1915년 서울중앙학교(현 중동학교)에 입학하지만 삶에 대한 번민으로 1918년 3년 수료 후에는 낙향하여 방황을 거듭했다. 그리고 다시 1921년에 상경하여 동향 친구인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를 만나게 되고,『백조』동인에 가담하여「말세의 희탄」,「단조」등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시인 이상화가 탄생한다.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일본에 갔던 상화는 1923년 9월 참혹한 관동대지진을 겪으면서 망국민의 비애와 절망을 절감한다. 식민지 종주국이자 적국인 일본에서 천재지변과 민족수난의 참상을 겪은 그에게 민족이란 天刑을 겪고 있는 운명의 얼굴, 바로 그 모습 자체로 떠올랐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한 현실주의, 진보주의 문학으로서 계급주의 문학운동에 관심을 가진다. 망국의 민족적 현실과 그 현실에서 특히 고통 받는 민중의 참상에 대한 응시와 애정으로, 문학주의에서 현실주의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1928년에 항일운동을 하여 대구경찰서에서 고생한 것으로 전해지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화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현저히 식어 간다. 1934년 그는 독립군인 형을 만났다는 이유로 다시 4개월 간 수감되고, 출감한 후 상화는 대구교남학교(현 대륜중고교)에서 무보수로 4년여 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오랜 신산스런 삶과 고통스런 정신생활 속에서 병을 얻게 되고 건강은 나날이 악화된다. 1943년 상화는 43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참고 자료
-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미래사
- 대구문인협회 편저/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루
- 한계전/한국 현대시 해설, 관동출판사
- 김병택/한국 현대시인의 현실인식, 새미
- 김재홍/이상화 - 저항시의 활화산, 건국대학교출판부
- 李相和의 서정시와 그 아름다움, 새문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