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중섭과 그의 작품세계
- 최초 등록일
- 2006.05.1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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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중섭의 예술세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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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중섭의 예술 세계에는 야수파적 요소와 향토적 요소가 깃들여 있다. 중섭 예술의 야수파적 요소라는 것은 중섭의 시대적 적응 속에서 근대에서 현대로 급격히 이행하는 1930년대의 이 나라 미술가가 공통적으로 지닌 예술세계 이기도 하다.
1905년을 전후하여 유럽에서 일어난 이 예술가의 유파가 감성의 해방, 색채의 해방 을 부르짖으면서 세계로 파급되어 일본에서 공부하던 한국인 화가들이 이 미술운동의 영향 받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부터였다. 중섭도 그 중 한 사람 으로「단순화된 포름」고 선명한「원색적 색조」그리고「대담한 필족」으로 새로 운 화면을 창조하였던 것이다.
수법적으로「3차원 공간 구현의 대담한 무시」,「생생한 젊음」, 이런 것들이 내 적인 생의 리듬을 타고 그의 환희 속에 전개되어갔다. 다이내믹한 필촉, 혼돈을 반영하고 혼돈을 낳고, 더구나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세계상으로 형성하여 가는 중섭의 포비즘,색채의 환희 속에서 색채로써 표현된 인간의 내면을 노래 부르는 중섭-그것들은 1954년 비협전 출품작 ,<소>와 <닭> 또 그의 작품전에 출품했던 < 닭>,<소>,<싸우는 소>,<황소>,<흰소>,<새들> 또는 1955년 11월초 잡지「新美術」 에 소개된 <鬪鷄>등에서 역력히 볼 수 있다.
중섭의 포비즘은 그것 자체가 전형적인 것인데 그렇다고 그것이 순전히 수입해 온 서양적인 것이냐하면 거기에는 이의가 있다. 그것은 이조의 쇄 국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한국의 근대정신이 그 근대화를 위하여는 의당 지녀야 할 정신적 외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야수파적 요소가 이 무렵의 우리 미술사에 가장 강하게 폭 넓게 침투한 것 은 그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또 중섭은 예술 생리로서는 야수파적이었으나 체질적으로는 에꼴 드 파리에 가까운 예술가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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